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다만 대법원이 전부 무죄 취지로 본 것은 아니어서, 유무죄 판단은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6일 대법원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74)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65)에게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근거로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공동의 죄를 범한 관계)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복합사용 피해자들에 대한 부분에 파기사유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각 회사에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해 98명이 폐질환 등을 앓게 하고 그중 12명을 사망케 한 혐의로 2019년 7월 재판에 넘겨졌다. 2021년 1월 1심은 두 물질이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올해 1월 “전문가들의 연구를 고려하면 CMIT·MIT가 폐 질환 또는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은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유죄로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사망한 원인이 어떤 가습기 살균제 탓인지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파기환송 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98명 중 94명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옥시레킷벤키저 등 여러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함께 사용한 ‘복합 사용자’ 그룹이었는데,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과 과실범의 공모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옥시 사건의) 피고인들이 제조·판매에 관여한 가습기살균제의 주원료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이고, 이번 사건 살균제의 주원료는 CMIT·MIT로, 그 주원료의 성분, 체내분해성, 대사물질 등이 전혀 다르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활용하거나 응용해 개발·출시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애경산업의 가습기살균제와 옥시 등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는 전혀 별개의 상품이기 때문에 이들을 공동정범으로 묶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에따라 파기환송심을 맡는 서울고법 재판부는 복합 사용자 그룹 피해자들의 사망 원인을 구체적으로 규명해 유무죄를 판단해야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 가습기 살균제만으로 복합 사용 피해자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더 심리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점에서 무죄 취지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판결을 전부 무죄로 뒤집은 것은 아니지만, 법조계에선 이번 판단으로 공소시효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무상과실치사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기 때문이다. 다수 피해자가 2010∼2011년에 숨졌는데 검찰이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를 기소한 시점은 2019년이다.
검찰은 공범이 기소되면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근거로 공소시효 만료 전에 옥시 측이 먼저 기소됐음을 들어 이들을 기소했지만, 옥시 측과 공범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면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범죄는 면소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지원 대상 피해자는 5829명으로, 이 중 1322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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