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사연[이준식의 한시 한 수]〈302〉
뜰 안 오래된 오동나무 한 그루,우뚝한 줄기는 구름까지 닿을 듯.가지는 남북에서 날아드는 새들을 맞고,잎사귀는 오가는 바람을 배웅하네.(庭除一古桐, 聳幹入雲中. 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우물가 오동나무(정오음·井梧吟)’ 설도(薛濤·768∼832)이 소박한 풍경화 속에는 억울한 사연이 하나 숨겨져 있다. 시는 아버지가 앞 2구를 읊고 딸 설도가 뒤를 이어 완성했다고 한다. 정원의 나무를 바라보며 부녀 간에 흔하게 오갈 법한 대화이지만 놀라운 건 당시 설도의 나이가 여덟, 아홉이었다는 것. 나이에 비해 시적 순발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아버지는 우람한 줄기에 감탄을 보냈고 딸은 그에 호응하여 가지와 잎사귀 묘사로 시를 마무리한다. 한데 더 놀라운 사실은 당시 아버지의 반응. 딸의 시구에 아버지는 ‘한참 동안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날아드는 새들을 맞고, 오가는 바람을 배웅하네’라니, 만약 여자의 일생이 이런 식으로 흐른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걱정했다는 것이다. 하나 아무래도 이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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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