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귀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8〉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먼지만 뿌옇게 쌓여 있는데,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방 안에 제멋대로 뒹굴어 자는데,보는 이 없는 것,알아주는 이 없는 것,이마 위에 이고 온별빛을 풀어 놓는다.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 놓는다.―박재삼(1933∼1997)살다 보면 유난히 독한 날이 있다. 해결할 일과 싫은 일과 어긋나는 일이 연달아 뺨을 때리고 지나가는 날이 있다. 김치로 뺨 맞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드문 장면이지만 일이 사람을 후려치는 것은 일상의 흔한 일이다. 휘청휘청 뒤로 주춤하다가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으로 밀어낸다. ‘나 우리 애들 보러 가게 좀 도와주라, 도와주라.’ 아무도 안 도와줄 것을 알지만 나는 오늘의 나를 도와주고 싶어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지친 마음에는 한 편의 시라도 달다. 지금 뭐 하고 사는 건가 푸념하다가도 이런 시를 읽으면, 읽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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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