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만화가 허영만 선생님 격려 힘 얻어
에이, 저 이제 손 털었어요.
한 판 뜨자는 기자의 제안에 그는 일단 뒷걸음질. 그러나 화투 몇 장을 만지작거리더니 비법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고수들은 일단 영역 표시부터 해요. 자신이 갖고 싶은 패를 구부려 평평하지 않게 만들어 알아차릴 수 있게라며 손가락 마술을 선보이다 화투장을 떨어뜨린다. 여기 담요가 없어서 그래요라며 웃는 모습이 능청스러워보였다.
무지 고생 했어요. 도박은커녕 고스톱도 해본 적이 없어 흑싸리가 뭔지도 몰랐고 손이 작아서 일반 화투는 손에 맞지도 않았죠. 영화 촬영 3개월 내내 실제 타짜 분께 배웠는데 전 화투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 것부터 어색했어요.
그런 그가 도박 영화를 하겠다고 먼저 나섰단다. 범죄의 재구성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의 팬이라는 그는 최 감독이 허영만의 만화 타짜를 영화화한다는 얘기에 무조건 하겠다고 외쳤다.
초반엔 조승우, 캐스팅 잘못됐다는 얘기를 들어서 긴장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허영만 선생님이 내 원작대로 할 거면 영화 만들지 말라는 말을 듣고 힘을 얻었죠. 만화 대신 시나리오만 붙잡고 천방지축에 깡 넘치는 독보적인 인물만 생각했죠.
꼭꼭 숨겨둔 애인 공개하는 느낌
그는 영화 타짜는 도박이 아닌 사람 얘기라고 했다. 우연히 섰다 판에 끼어든 고니는 누나의 이혼 위자료까지 날리며 집을 뛰쳐나온다. 최고의 타짜를 꿈꾸던 어느 날 전설의 타짜 평경장(백윤식)을 만나고 그에게 비법을 전수 받는다. 누나 위자료의 5배만 벌면 도박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도박의 설계사인 정 마담(김혜수)의 팜므파탈적인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구강도박의 달인 고광렬(유해진)과 도박판 속 의리를 다진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가 카리스마 연기를 펼쳤으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과거에 침 좀 뱉었나라며 고교시절에 놀았는가에 대해 묻자마자 침 좀 안.뱉.었.어.요.라며 딱 잘라 말한다. 마치 기자의 속을 다 꿰뚫고 있는 능구렁이 같았다. 이제 20대 중반인데.
제가 원래 조숙해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어서 어른처럼 행동했어요. 집에 남자라곤 저 밖에 없어서 스스로 가장이라고 생각했고 돈도 빨리 벌고 싶었죠. 하지만 누가 그러더군요. 모든 남자의 정신연령은 14세라고. 하하.
인터뷰 말미에 화투장을 정리하면서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며 오랜 시간 꼭꼭 숨겨둔 애인을 공개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내 부담될 것도 없으니 후회될 것도 없다며 깡 있게 말한다. 그의 눈동자에서 언뜻 고니의 눈동자가 보이는 듯 했다.
김범석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