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반도에서 고종이 숨겨놓은 국새가 있다고 주장해 학계에서 왕따 당하는 국사학자 역을 맡은 조재현은 주변사람들에게 10월8일이 무슨 날인지도 모른다며 독설을 퍼붓는다. 1895년 이 날은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의 칼에 시해된 날이다. 이웃나라의 왕궁에 자객을 보내 왕비를 참살하고 시신을 능욕한 사건은 세계사를 통틀어 달리 찾아볼 수 없다. 이 사건은 우리에겐 지금도 치유되지 않은 아픔이지만 일본에겐 존재하지 않는 역사처럼 돼있다.
작전명은 여우 사냥이었다. 일본은 이 사건을 정부와 무관한 극우파의 소행으로 축소하려 했으나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가 가담한 범죄였음이 외교문서 등을 통해 나중에 밝혀진다.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는 미우라는 종범()이고 주범은 미우라의 전임자인 이노우에 가오루() 공사라고 지목한다. 이노우에는 일본 외상과 내상을 지내고 조선 문제에 관해 전결권을 부여받았던 인물이다. 결국 시해사건은 일본 정부가 주도한 국가범죄였다.
일본전문가인 이종각 씨가 최근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동아일보사 간행)를 펴냈다. 저자는 일본에 정보를 팔아넘기고 명성황후 시해를 도왔던 조선인 훈련대 대대장 우범선과 그를 살해한 자객 고영근의 행적을 따라가며 역사의 인과응보()를 보여준다. 민씨 가의 노복 출신으로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았던 고영근은 일본으로 도망가 일본여자와 결혼해 살던 우범선을 살해하고 체포된다. 고종황제는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 고영근의 선처를 요구해 그는 5년여 감옥살이를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 후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을 지키는 능참봉이 된다.
일본 아사히TV는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당시 범인들의 후손이 100여년 만에 한국을 찾아 사죄하는 모습을 담은 특집뉴스를 어젯밤 보도()스테이션 프로그램에서 14분간 방영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라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본 미디어에 등장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한 에이콤은 수차례 일본 진출을 모색했으나 일본 극우세력의 훼방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한일간 역사인식 격차를 줄이는 일은 사실을 아는 데서 출발한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