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동남아 등지로 강제 동원한 한국인 위안부들을 군 간호사 신분으로 위장한 사실이 정부 조사 결과 처음으로 밝혀졌다. 일본이 군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시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지원위)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인도네시아로 강제 동원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면담 및 현지조사로 군 위안부 위장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동원 여성명부에 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14일 펴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은 인도네시아로 끌고 간 한국인 위안부들을 1945년 8월 1일과 22일, 30일 세 차례에 걸쳐 간호사와 임시간호사, 용인(군속 중 가장 낮은 계급) 등으로 편입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에 배치된 일본 남방군(제7방면군) 3개 육군병원 명부에 301명의 한국 여성이 간호부 신분으로 기재된 것.
보고서를 작성한 강정숙 전 지원위 전문위원은 한국인 여성은 1945년 당시 위안부 외에 다른 명목으로 인도네시아에 머무를 가능성이 낮았다며 당시 간호부 신분으로 편입된 여성 대부분이 일본군 위안부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간호사로 위장 기재된 한국인 여성들은 실제로 간호사 역할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쿠타라자 등지로 끌려갔던 군 위안부 출신 이모 할머니는 위안소 여자들은 낮에 간호원으로 일했다가 저녁에는 군 위안부가 돼 군인들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다른 이모 할머니도 전쟁이 끝난 후 간호사복을 입고 십자 완장을 찼다며 연합군이 위안부라는 존재를 모르게 하려는 시도로 보였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 간호사 훈련을 받고 간호활동을 한 위안부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원위 조사관과 면담한 생존자 양모 씨(87여)는 일본군이 간호훈련 외에도 기루쿠미다이라는 칼 한 자루씩을 한국인 여자들에게 주고 연합군이 오면 찌르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지원위 관계자는 일본군은 부족한 간호인력을 확보하면서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군 위안부 존재를 숨기기 위해 이 같은 위장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재명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