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부장이 상무로 승진하는데 보통 4년 정도가 걸린다. 중남미 지역 TV마케팅을 담당해온 해외 영업통 조인하 상무(38)는 그 기록을 9개월로 단축시켰다. 전북대 통계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2007년 TV영업 분야 최초의 여성 주재원으로 아르헨티나에 파견된 뒤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12%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고, 텔레비전 시장점유율 36%로 1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런 공적을 평가받아 3월에 부장이 된 뒤 초고속 질주를 삼성전자에서 별을 달았다. 여성들은 영업과 마케팅 분야에 취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린 의미가 크다.
한국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2009년 이후 남성을 앞서고 있다.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 등 각종 고시에서는 여풍() 당당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취업자 중 전문 관리직 종사자 비율도 2002년 14.9%에서 2010년 21.0%, 2011년 21.4%로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135개 국 중 108위에 그친다. 남녀의 경제 활동 임금 격차에서 117위, 고위직 비율에서 104위로 꼴찌들의 리그에 머물러 있다. 기업과 공직에 진출하는 젊은 여성들은 많아도 대다수는 비() 핵심적 업무에 맴돌고 있고 승진 가능성도 낮음을 반영하는 수치다.
미국 시사잡지 애틀랙틱의 수석 에디터가 쓴 남자의 종말이란 책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진행방향은 가부장제에서 가모장()제로 나가고 있다. 미국에서 의사 변호사 약사 등 전문직 관리직의 여성 비율은 1980년 21.6%에서 2011년 51.4%에 늘었다. 중국 민간기업 중 40% 이상이 여성들 소유다. 성의 권력교체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여성 인력의 활용은 여성을 배려하는 차원이 아닌 기업과 사회의 생존전략이란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어제 발표한 삼성의 정기 임원 인사에서는 조 상무를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의 여성 임원 승진이 이뤄졌다. 기대를 모았던 여성 CEO는 나오지 않았지만 여성 임원 승진자들이 지난해 9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났다. 연말 인사 시즌을 앞두고 견고한 유리천장을 부수고 여성 임원과 관리직이 더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본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