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정권 출범부터 최근까지 청와대 정문을 통해 검문검색 없이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청와대 제 2부속실 이영선 행정관이 청와대 소유의 차량을 몰고 최 씨의 집이나 사무실 등으로 가서 최 씨를 태우고 청와대로 들어왔다가 나갈 때도 행선지까지 운전을 해줬다는 것이다. 이 행정관은 강남의 비밀 의상실에서 최 씨가 박 대통령의 옷을 고를 때 휴대전화를 자신의 와이셔츠에 닦아 건넸던 공직자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어제 국회에서 “(최순실 씨를) 태운지 안 태운지는 모르겠지만 청와대 차량이 청와대 본관 갈 때는 검문하지 않는다”고 최 씨의 무상출입을 사실상 인정했다. 박 대통령 취임 초기에 최 씨가 탄 차를 검문했다가 시비가 벌어지는 바람에 경찰 경비 책임자가 좌천을 당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 뒤로 최 씨가 탄 차는 제지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 사람을 포함한 국민을 감쪽같이 속였다. 지난달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원종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 씨 출입설에 대해 “본 일도, 들은 일도 없다. 내가 아는 한에는 없다”고 부인했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이 불거진 2014년 12월 7일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에 초청해 “청와대에 실세가 없으니까 (내가 키우는) 진돗개가 실세라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최 씨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비서실장도 허수아비로 만들며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 부인을 보좌한 제2 부속실에서 최 씨의 시중이나 들었단 말인가.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어제 “전혀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수없이 양산되면서 외신들까지 가감 없이 받아쓰고 있다”고 언론을 비판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박 대통령이 “주로 연설·홍보 분야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했던 대국민 사과도 거짓말로 드러났다. 대체 최 씨의 국정 농단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인데 대통령과 청와대는 진실을 감추고 있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해 ‘집단 울분’에 빠졌다는 정신과 의사들의 진단이 나오는 판인데 청와대 사람들은 언론 탓이나 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박 대통령이 최 씨를 청와대 무상출입시키며 힘을 실어주었기에 가능했다. 박 대통령은 원로들을 만난 자리에서 “제가 사교(邪敎)를 믿는다는 얘기까지 있더군요”라고 탄식하듯 말했다고 한다. 사교라는 표현이 그렇게 억울하다면 늘상 법과 원칙, 애국심을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 도대체 최 씨와 아버지 최태민 씨에게 어떤 빚을 졌기에, 또 무슨 약점을 잡혔기에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휘둘린 것인가. 대통령의 사생활일지라도 그것 때문에 온 국민이 충격과 자괴감에 빠지고 국정이 마비될 지경에 이른 만큼 박 대통령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야 한다. 이것도 최 씨에게 물어볼 참이라면 남은 임기가 무슨 소용인가.
한기흥기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