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수니파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권력을 다시 잡으면서 탈레반 지도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다.
15일 BBC 등에 따르면 현재 탈레반을 이끄는 사람은 이슬람 율법학자 출신인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60)다. 탈레반 근거지인 남부 칸다하르 태생으로 2016년부터 탈레반의 종교, 정치, 군사 등 주요 결정을 관장하고 있다. 좀처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지도자로 별명은 ‘믿는 자들의 리더(Leader of the Faithful)’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과거 아쿤드자다의 강연 중 괴한이 그에게 총을 겨눠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고 태연하게 대처할 정도로 강심장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탈레반 측이 부인했다.
아쿤드자다 밑에는 물라 모하마드 야쿱(31),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53), 시라주딘 하카니(48) 등 3명의 부지휘관이 있다. 셋은 각각 탈레반의 군사작전, 외교 및 대외소통, 군수물자 조달 및 재정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탈레반 창립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1960∼2013)의 아들 야쿱이다. 당초 아쿤드자다의 전임자인 아흐타르 모하마드 만수르가 2016년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숨졌을 때 탈레반 내부에서는 야쿱을 새 지도자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야쿱 본인이 자신이 너무 어리고 전쟁 경험이 없다며 아쿤드자다를 지도자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의 후광 등을 감안하면 야쿱이 탈레반의 새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바라다르는 지난해 9월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상을 주도했다. 지난달 말 중국 톈진에서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하며 중국의 지원을 촉구하는 등 협상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오마르와 함께 탈레반을 공동 창립했으며 오마르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었다는 평도 받고 있다. 2010년 아프간 정부군에 체포됐다 2018년 석방됐다.
하카니는 탈레반 산하의 무장단체 하카니 네트워크의 수장이다. 그는 과거 옛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무장투쟁을 주도한 잘랄루딘 하카니의 아들이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1990년대 후반부터 탈레반과 협력했으며 이후 여러 테러를 배후 조종했다. 하카니 또한 2008년 수도 카불에서 일어난 호텔 테러에 연관됐다는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배 명단에 올랐다. 당시 테러로 미국인을 포함해 총 6명이 숨지자 미국은 그에게 500만 달러(약 58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최대 언어인 파슈토어로 ‘학생’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 오마르는 1989년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후 군벌끼리 치열한 내전을 벌이자 이슬람 전통 교육기관 ‘마드라사’ 소속 신학생 2만5000명을 주축으로 1994년 탈레반을 설립했다.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은 오마르를 ‘우리의 지도자’로 높이 평가했다.
카이로=황성호특파원 hsh0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