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새 원장에 강봉균() 전재정경제부 장관을 앉히려는 움직임이 재정경제부와 청와대 일각에서 조직적으로 나타나 파문이 일고 있다. 경제계는 이 움직임이 사실이라면 KDI의 독립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상 초유인 원장 공채 실험 정신에 어긋난다며 우려하고 있다.
26일 국무총리 산하 경제사회연구회(이사장 임종철 서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KDI 원장 공모에는 이진순 현 원장과 강 전장관을 포함해 모두 6명이 응모해 선발을 기다리고 있다.
KDI가 원장을 공모 절차를 통해 뽑는 것은 71년 창립 이래 처음. 경제계는 물론 KDI 내부에서도 학식과 소신을 겸비한 인물이 원장이 되면 관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경제 현안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진념 경제팀이 강 전장관을 미리 원장으로 점찍어 분위기를 잡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이런 기대는 허탈감으로 바뀌는 분위기.
재경부와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은 강 전장관이 신청서를 내기 전인 이 달 초부터 학계와 언론계 주요 인사를 접촉해 강 전장관이 KDI원장에 임명될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을 요청해 사전내정설을 증폭시켰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선배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려는 관료들의 희망과 정책에 비판적인 보고서에 부담을 느낀 정권 차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라며 KDI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경부의 한 국장은 이에 대해 강 전장관은 거시경제 정책을 오랫동안 맡아왔고 KDI 파견근무도 해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안다며 국책연구기관은 자율성 못지않게 정부와의 정책조율 기능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분야 싱크탱크인 KDI를 정부 정책의 들러리로 삼으려는 시도는 경제논리의 획일화를 부추겨 나라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반론이 지배적이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박사는 강 전장관이 개인적으로 역량이 있는 분이라 하더라도 관료출신이 잘 하는 영역과 학자가 해야 할 분야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새 원장은 불편부당한 시각에서 국내외 경제 흐름을 조망하고 정치권 등의 외풍을 차단할 역량을 갖춘 인물이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기업으로서도 KDI의 거시경제 보고서는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사업전략을 짜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며 정부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채워진다면 KDI 보고서의 무게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DI원장은 관료 5명, 학계 8명, 기타 2명 등 15명으로 구성된 경제사회연구회가 다음달 7일 최종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