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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 대통령의 실패

Posted April. 10, 200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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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박정희()정권 이래 26년간 지속되어온 군부독재가 사실상 막을 내렸을 때 국민적 합의는 '장기집권은 이제 안돼'였다. 대통령 단임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고, 그 기한을 5년으로 하는데는 당시 1노() 3김() 간에 정치적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이번에 안되더라도 다음에는 내가'라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아무튼 그 후 노태우()씨에 이어 두 김씨가 차례로 집권을 했으니 5년 단임제의 덕을 보긴 본 셈이다. 그런데 노태우 김영삼()씨는 '실패한 대통령'이고, 현 김대중()대통령은 눈앞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될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제왕적 권력'을 갖는 대통령의 실패는 비단 대통령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나라와 국민의 실패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왜 계속 실패했는가.

우선은 대통령 감이 아닌 인물을 국민이 잘못 뽑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 바닥에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지역주의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노태우씨는 양김씨 분열에 따른 어부지리로 대통령이 됐다. 87년 대선에서의 양김 분열은 한국정치의 지역주의화를 고착시켰으며 양김의 집권을 거치면서 심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제대로 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YS의 실패는 소수파인 DJ에게 기회를 주었고, DJ정부는 지역주의를 크게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실패했다. 왜 실패했는지를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국민통합의 실패로 내년 대선 역시 지역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참담한 현실이다. 이렇게 된 모든 책임을 DJ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고 해도 여전히 DJP+에 매달리는 'DJ의 한계'에서 실패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5년 단임제가 '실패한 대통령'을 낳느냐는 문제다. 민주당 김근태()최고위원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3년쯤 지나 레임덕현상이 오면서 대통령은 남은 임기안에 뭔가 이루려고 초조해지는 반면 국정은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으니 강성으로 돌아서고, 그러다가 실패를 자초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같은 당 이인제()최고위원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다른 데서 비롯되는 권력의 불안정성을 꼽는다. 예컨대 차기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1년 2개월이 지나면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지난 예에서 보듯 기를 쓰고 여대야소()를 만들려 하고 안되면 야당사람 끌어오려 하는 구조에서 안정적 국정운영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 김덕룡()의원은 지역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판을 위해 개헌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개헌반대론자들의 말은 다르다. 중임제를 하면 처음 4년 동안은 온통 재선만 생각할 것 아니겠느냐,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같이 한다고 여소야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정부통령제는 자칫 지역분열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등등이다.

따라서 요즘 대두되고 있는 개헌론은 5년 단임제가 정말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것인지, 정부통령제가 지역주의를 완화시켜 국민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국민 합의를 이끌어내는 장기적 노력이 선행될 때만이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행여 정치판을 흔들어 권력잡기용으로 쓰려는 술수의 차원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현재 민주당과 여권 주요인사들이 보이고 있는 '치고 빠지기식' 행태는 정략적 음모의 냄새만 풍길 뿐이다. 정 그럴 생각이라면 당론을 만들어 다음 대선에서 공약으로 국민에게 가부를 묻는 것이 옳다.

결국 중요한 것은 권력구조보다 그 구조를 끌어나가는 '정치의 질'이고 어떤 리더십이냐는 점이다. 권력을 나누는데 익숙지 못한 독선적 리더십으로는 개헌을 어떻게 한들 선진적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개헌론보다 시급한 것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찾는 일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인 국민이 바른 눈으로 찾고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그것부터 생각할 때다.



전진우<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