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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친구

Posted November. 03, 20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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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대중문화로서 인기를 누리는 것은 100분 안팎의 짧은 상영시간 안에 관객들에게 최대한 정신적 만족감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요즘처럼 빨리빨리가 강조되는 시대에는 맞지 않는 예술일 수 있다. 영화를 보려면 해야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고싶은 영화의 상영시간이 몇시인지 알아봐야 하고 표를 예약해야 한다. 극장까지 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좌석에 앉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안방에서 어느 때나 볼 수 있는 TV프로그램도 재미가 없으면 30초 만에 다른 채널로 돌리는 판에 이런 원시적인 영화가 관객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몰입의 즐거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캄캄한 극장에 앉아 영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 있노라면 세상 시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연극 뮤지컬 미술감상 같은 문화활동도 똑같이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들지만 비용이나 강도()면에서 역시 영화만한 게 없다. 젊은이들은 한술 더 떠 극장에 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래서 영화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꿈과 희망의 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제작이나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영화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로 무장되어 있다. 약육강식의 살벌한 생존 경쟁이다. 영화 속에서 만나는 사랑과 우정의 멋진 신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국산영화 한편에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있고 흥행에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가 상승세를 구가하면서 대박 신화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능력 있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흥행 신화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영화는 미국 할리우드영화의 위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다른 나라 영화계에서 성공 연구대상이다.

영화 친구로 8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감독 곽경택씨와 배우 유오성씨의 맞고소사건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콤비라고 불릴 만큼 가까운 사이였던 이들이 갈등관계에 놓인 것은 어떤 말못할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돈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기투합해 친구신화를 탄생시켰던 이들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는 모습은 영화 친구를 소중하게 기억하는 팬들에겐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 영화속 세계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혹시라도 잘 나가는 한국 영화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지 걱정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