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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위스키에 취한 한국

Posted November. 19, 200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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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코틀랜드 지방을 처음 찾는 사람은 위스키와 똑같은 짙은 갈색의 물이 흐르는 개천을 보고 놀란다. 아무리 위스키의 본고장이라고 하지만 개울물마저 위스키와 같은 색깔이라니! 물빛의 비밀은 피트라고 불리는 이탄()이다. 스코틀랜드 지방 곳곳에 짙은 갈색의 이탄이 깔려 있어 그 위를 흐르는 개울물은 자연스럽게 위스키 빛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탄은 디스틸러리(Distillery)라고 불리는 위스키 양조장에서 보리를 엿기름으로 만들어 발효시키는 과정에 연료로 사용된다. 위스키 색의 밑바탕은 바로 보리에 스며든 이탄 연기의 갈색이다.

모든 술이 다 그렇듯 위스키 역시 물이 좋은 곳에서 명품이 나온다. 사슴머리 상표와 삼각형 병으로 유명한 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의 역사는 물과 관련된 전설에서 시작된다. 글렌피딕 창업자가 커다란 사슴이 계곡을 한참 헤매다가 샘을 찾아내 맛있게 물을 마시는 꿈을 꿨다. 꿈에서 깨어난 그가 기억을 더듬어 계곡을 찾아가 보니 실제로 물맛이 기가 막힌 샘이 있었다. 그가 그 물로 만들기 시작한 위스키가 글렌피딕이라는 것이다. 글렌피딕은 사슴의 계곡이란 뜻이니 위스키 명가의 전설이지만 참으로 그럴듯하다.

영국인들이 위스키에 쏟는 정성은 지극하다. 위스키 원액을 오크통에 담아 최소한 6년 이상 숙성해야 판매할 수 있고 그 값이 만만치 않으니 이해할 만하다. 영국인들은 오랜 숙성 과정에서 오크통의 틈새로 빠져나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즉 기화()하는 위스키를 천사의 머리카락(Angels hair)이라고 부르며 아까워한다. 프랑스의 코냑지방에서도 숙성기간에 날아가는 코냑을 역시 천사의 머리카락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사라지는 귀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는 국경이 없나 보다.

그런 귀한 위스키를 유독 한국인은 벌컥벌컥 마신다. 올 들어 10월까지 국내에서 5270만병(500 기준)의 위스키가 팔렸다고 한다. 고급 위스키 시장에서는 밸런타인 17년산의 경우 생산량의 40%를 한국 주당이 마실 정도로 광풍이 불고 있다. 오죽하면 타임 최근호가 한국이 지난해 2억5600만달러어치의 스카치 위스키를 수입해 전년 대비 20%의 신장세를 보였다며 위스키 업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을까. 한국이 위스키에 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 그래서 대통령 선거일이 20여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후보를 확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한심스러운 상황이 빚어진 것은 아닌가. 위스키의 연륜을 헤아리며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