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0시30분 대한극장에서는 색다른 시사회가 열린다. 이날 선보이는 작품은 영화가 아닌 KBS가 창사특집 드라마로 제작한 TV문학관 향기로운 우물이야기.
최신 음향시설이 갖춰진 극장에서 영화도 아닌 TV드라마 시사회를 갖는 것은 이 작품이 디지털방송용으로 제작한 첨단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고화질(HD)급으로 제작돼 화질이 DVD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음향도 홈시어터에 사용되는 5.1채널로 제작됐다. 이 때문에 웬만한 영화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KBS 드라마국 안영동 주간의 설명이다.
아직은 무늬만 디지털 방송(?)=축구팬인 김태식씨(36)는 지난해 월드컵 기간에 큰 맘 먹고 디지털TV를 구입했다. 월드컵기간엔 선수들의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고화질을 맘껏 즐겼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디지털TV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는 게 김씨의 불만.
방송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지상파방송사들이 주당 10시간 이상(올해 봄철 프로그램 개편부터는 13시간 이상) HD급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아직까지는 비용부담 때문에 HD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자연다큐멘터리나 드라마보다는 아침방송용 토크쇼 제작 등으로 HD 제작비율을 맞추고 있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국내에 디지털TV 113만여대가 보급됐지만 디지털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TV는 11만여대에 불과하다. 이는 디지털방송을 시청하려면 분리형의 경우 디지털방송수신기(셋톱박스)를 별도 구입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소비자들이 주로 분리형 디지털TV만 장만하고 셋톱박스 구입은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신장치가 내장된 일체형을 구입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만 일체형에 대한 관심이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2003년이 디지털 방송 본격화의 원년()이 될까=정보통신부는 올해에는 디지털TV 보급 못지 않게 실제 디지털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가구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통부 이재홍 방송위성과장은 100만원이 넘던 셋톱박스 가격이 30만40만원대로 떨어진 데다가 PC에 설치한 뒤 디지털TV에 연결하기만 하면 셋톱박스 없이도 디지털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HD TV 수신카드가 16만원대에 나왔다며 올해 12월까지는 디지털 방송 시청 가구수가 40만가구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방송사들이 HD급으로 제작한 프로그램들이 양적으로 늘어나고, 프로그램 수준이 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점도 소비자들의 디지털방송 시청 욕구를 자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디지털TV 방송방식을 놓고 현재의 미국방식을 중단하고 유럽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주장의 타당성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미 미국방식이 표준이 된 마당에 이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
디지털TV는 제2의 휴대전화=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제조업체들은 지난해 해외시장에 디지털TV를 79만대, 금액기준으로는 9억6400만달러를 수출했다. 특히 디지털TV 최대시장인 북미지역에서는 36만대를 수출, 시장점유율 15%를 차지했다. 아직까지 시장점유율에 있어 소니 등 일본업체에는 밀린다.
그러나 기술력에서는 일본 업체보다 앞서므로 아날로그 TV에서 겪었던 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
국내업체들은 일본업체에 비해 디지털TV의 핵심부품인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고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프로젝션 등 모든 디스플레이를 직접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것.
특히 미국 정부가 2004년부터 시작해 2007년까지는 모든 TV의 디지털화를 의무화할 방침이어서 미국 시장은 거대시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때문에 2010년까지 미국에서만 1억대의 교체수요가 예상된다.
실제로 올해 들어 수출 증가세는 가파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 2월 수출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에 이른다며 이런 추세라면 올해 20억달러 수출 달성은 문제가 없으며,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정통부는 2005년까지는 국내업체의 디지털TV 생산규모가 내수와 수출을 합쳐 570만대로 세계 시장의 22%를 차지하면서 일본업체와 치열한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공종식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