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 대한 인수합병(M&A)이 진행되면서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가 미궁에 빠졌다. 채권단은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 조건으로 SK를 비롯한 그룹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SK의 최대주주가 크레스트 시큐러티스로 바뀌면서 계열사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SK 계열사의 지원이 없다면 은행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SK글로벌을 살릴 이유가 없고 실사 결과에 따라 법정관리 또는 청산도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자신이 보유했던 전 계열사의 주식을 채권단에 SK글로벌 정상화의 담보로 잡힌 최태원() 회장이 주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사실상 최 회장의 그룹 지배가 막을 내리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SK, 글로벌 지원 어렵다=SK의 최대주주로 떠오른 크레스트의 모()회사 소버린 자산운용은 SK측에 관계사에 대한 부당한 지원은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한 바 있다. 소버린은 14일 발표한 성명에서도 소버린의 목표는 주주가치의 확립이라고 밝혀 SK의 기업가치를 낮출 수 있는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에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했다.
이에 따라 SK글로벌은 15일까지 제출하기로 했던 2차 자구계획안 제출을 연기했다. 소버린측의 입장 표명으로 자구안의 핵심인 SK에 대한 주유소 매각과 대주주 출자 등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SK텔레콤도 이미 공식 논평을 통해 현행법을 벗어난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소버린은 SK측에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건으로 이사회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를 강조하고 있다. 채권단에 담보로 잡힌 최 회장의 계열사 주식 회복문제는 관심권 밖에 놓여 있는 것이다.
SK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상장 계열사 지분은 SK 0.11% SKC 7.5% SK글로벌 3.31% SK케미칼 6.84% 등 현재 시가로 300억원 상당. SK글로벌에 연대보증했던 금액 2조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다. 게다가 비상장 지분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면 금액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
채권단, 우리만 손해볼 수 없다=채권단은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SK가 SK글로벌 소유의 주유소를 제값에 사주고 SK글로벌에 외상으로 준 석유대금 2조원을 회수하지 말고 현행 수준을 유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SK글로벌은 매출의 70%, 이익의 90%가 SK SK텔레콤 등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채권단 지원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SK를 압박하기 위해 SK글로벌이 소유한 SK주유소를 다른 정유사에 파는 것과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정유사업은 주유소 판매망이 경쟁력의 핵심이어서 이를 LG 등 다른 정유사에 팔면 매출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SK가 갖고 있는 매출채권 2조원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명분에서 채권단의 주장이 그리 힘을 받지 못하고 있어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다.
박중현 김두영 sanjuck@donga.com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