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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지오그래픽 전남 곡성 태안사

Posted April. 23, 200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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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광양의 섬진강은 넓기도 넓고 강변모래 또한 금빛 찬란하다. 허나 상류 곡성의 섬진은 좁기도 좁고 강심엔 반석처럼 넙적한 바위도 많다. 강 모습 다름은 강을 낸 산 모습의 다름에서 연유할 터. 지리 백운 거산을 가르는 장대한 하류와 달리 상류의 섬진은 크게 이름날 것도 없는 고만 고만한 산 아래 그저 그런 계곡의 개천티를 벗지 못한다. 곡성의 압록은 그런 섬진강이 엇비슷한 보성강과 만나는 곳. 태안사(주지 스님조계종 19교구 화엄사 말사)는 거기서 멀지 않다.

화엄사 지나 들어선 구례. 군청 앞에서 18번국도(2차선)를 따른다. 녹음방초 신들린 듯 피어나는 춘색 도도한 곡우 막 지난 지금. 4 쯤 지나 왼편에 강이 보인다. 섬진강이다. 이 강을 끼고 달리기를 7. 두 물 만나는 압록에서 다리(예성교) 건너 보성을 향한다. 이번에는 18번 국도가 보성강 왼편에 놓인다. 6 전방. 태안사 팻말이 보인다.

절은 예서 7거리. 840번 지방도로는 산과 산이 이룬 골 안을 가른다. 옹색하다 싶을 만큼 좁은 골 안의 평지. 곡성()은 이름 그대로다. 사방팔방 둘러보아도 온통 산. 절은 길가의 건모()마을에서 비포장 산길로 이어진다. 태안사의 진면목은 예서부터다.

매표소 앞. 녹음 짙은 숲과 계곡의 초입이다. 계곡은 비포장도로(능파각까지 1.6)지만 승용차도 문제없다. 허나 흙먼지 피우며 차로 오르기 보다는 숲 향기 맡으며 걷기를 권한다. 계곡 끝에서 만난 능파각(). 계곡 가로지르는 다리를 겸한 누각이다. 세속의 번뇌는 다리 아래 던져 버리고 불교로 입문함을 상징한다. 여기서부터는 정말로 걸어야 한다. 일주문으로 이어진 200여 m 소담스런 숲길이 시작된다.

돌을 박아 다진 옛 오솔길. 숲 그늘이 어찌나 짙은 지 옷을 벗어 쥐어짜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 하다. 새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부처님 향한 일심()을 뜻하는 일주문. 동량 잘라 세운 기둥의 왼편 밑을 보자. 벌이 집을 짓고 쉼 없이 드나든다. 경내로 오르는 도중. 꿩 다람쥐를 여러 마리 만났다. 사람보고도 도망가는 기색이 아니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탓이다.

이어 경내. 3단 축석의 도량은 산중사찰의 전형이다. 극락보전 처마 아래 풍경소리만이 경내 유일한 소음. 온종일 머물러도 관광객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요함은 태안사의 매력이다.

많은 봉우리에 둘린 이곳은 한 줄기 물만 흘러 나갈 뿐이다. 길은 멀고 막혔으되 많은 승려가 이를 수 있고 경치도 절경이니 승도들이 청정함에 능히 안주할 수 있다 한 눈에 명당임을 알아보고 여기서 동리산()파 선문을 연 신라 말 혜철 선사(785861)의 말씀. 경내 가장 높은 곳에 모셔진 선사의 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절은 동그랗게 둘러싼 산 한가운데 포근히 안기듯 깃들어 있다. 범부의 눈에도 명당이다.

태안사는 신라 말 중국 유학파 스님이 전파한 선종(참선 중심) 수행도량인 구산선문(전국 9곳의 선방 사찰) 가운데 하나. 용과 신()은 상서로움과 기이함을 드러내고 벌레와 뱀은 그 독성을 숨기며 소나무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구름은 찾아와 깊이 숨는 이 곳.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따뜻하니 수행하기에 뛰어난 곳이다.선사의 이 말씀은 그대로 이뤄져 1200 여 년간 화두를 틀어잡고 용맹 정진해온 선방 수좌의 수행 터가 됐다. 예나 지금이나. 산내 암자에서는 스님들의 참선수행이 한창이고 동안거 하안거에는 수십 명의 선승이 앞 다투어 찾는다.

어머니 품안처럼 포근한 태안사. 여기 발 들이면 속인일지라도 숨겨진 불성이 지긋이 고개 들며 선객이 되고픈 성정에 마음이 흔들린다. 경내 적묵당()은 그런 세인을 위해 최근 문을 연 참선 수행 공간. 새소리 풍경소리 벗해 세속의 상념 털어버리고 단 한순간이라도 진실하게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이 봄날, 태안사에서.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