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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놈이 멋있다고?

Posted May. 01, 200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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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40대 여성이면 다 아는 만화가 캔디 캔디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할 만큼 명랑한 고아소녀 캔디가 잇따라 남학생을 사랑하고 헤어지면서 더 강해진다는 이야기. 캔디에 푹 빠졌던 당시 여학생들은 첫사랑 안소니의 부드러움이냐, 불량소년 테리우스의 반항적 매력이냐, 아니면 언제나 캔디를 지켜보는 윌리엄(알버트와 동일인물)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랑이냐를 놓고 누가 더 멋진지 다투기도 했다. 어차피 만화이긴 해도 긴 머리를 헝클어뜨린 테리우스가 제일 잘생겨서, 지금도 가수 신성우나 축구선수 안정환은 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나온 지 두 달도 안돼 20만부가 팔렸다는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 속의 지은성도 테리우스와 비슷하다. 고교 불량서클 4대 천황의 짱인 만큼 보스기질도 있고 터프하지만 여자보다 예쁜 꽃미남이다. 이 소설을 쓴 열여덟살짜리 소녀 작가 귀여니(본명 이윤세)는 인터넷에 연재하는 동안 여학생 팬들이 지은성 멋있다고 난리였다며 예나 지금이나 여자애들은 키 크고 돈 많고 조폭두목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그놈을 읽고나서 딸에게 보여주며 옛날 생각난다고 하더라는 말도 꽤 들었다고 했다.

차이점은 있다. 캔디는 테리우스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끝나고 못내 슬퍼했지만 그놈 속의 여주인공 한예원은 그렇지 않다. 5년 후 그들은 가볍게 동거할 뿐이다. 왜 두 사람을 결혼시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귀여니는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일생 망치게요? 했다. 연애는 멋있는 그놈과 해도 결혼은 능력 있는 남자와 해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10대는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는 것쯤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기며, 여학생에게만 강요하는 순결교육을 받으면서 속으로 웃는다고 들려주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10대의 변화를 부모들이 잘 모른다는 것뿐.

귀여니 현상을 보는 기성세대는 편치 않다. 흑. 넘 행복해. 이대로 죽을 수만 있다면. _ 아, 안된다. -_- 나 배고프다 식의, 컴퓨터 채팅을 옮겨온 듯한, 만화대사를 나열한 듯한, 문학이랄 수도 없는 것이 폭발적 인기라는 데 제도권 작가들은 절망한다. 깊이 있는 독서를 안 하고 못해서 생각 짧고 참을성 없는 10대를 걱정하는 소리도 높다. 청소년의 발칙한 사랑놀음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20여년 전 테리우스를 좋아했던 소녀들도 지금은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 키우며 잘 산다. 가정의 달이자 청소년의 달인 5월, 가족들이 서로를 더 이해하려면 그놈 같은 소도구도 활용할 만하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