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선 김근태 의원은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칠성판에 묶여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던 때의 악몽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당시 고문을 하면서도 태연히 시집간 딸 걱정과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 걱정을 하는 기술자들의 무심함에서 그는 제도화된 야만의 두 얼굴을 보았을 게 틀림없다. 집단폭행을 가한 뒤 알몸으로 바닥을 기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해 봐라고 강요하는 그들 앞에선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심마저 짓밟는 야만의 비열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는 옥중기록 남영동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산산이 부서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18년 전 권력의 야만을 폭로했던 김 의원이 다시 법정에서 우리 사회의 야만을 들춰냈다. 원칙과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추해지고 꿈과 이상을 지키려면 비웃음거리가 되는 부조리를 고발한 것이다. 그는 또 이런 야만을 그냥 둔 채로 선처를 간청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의 최후진술은 소크라테스의 최후변론과 비슷한 논법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들이 무지한지도 모르는 지배층의 허세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당신들에게 눈물로 자비를 호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판을 마친 뒤 지지자들과 함께 손을 들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도 독배를 들기 전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소크라테스를 묘사한 다비드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그가 탈옥을 권유하는 제자에게 판결에 효력이 없으면 그 나라가 존립하겠는가라고 물은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개인은 예의를 갖추면서 야만성을 면하고 사회는 법질서를 확립하면서 야만성을 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에 반하거나 지나치게 가혹한 법은 오히려 개인과 사회를 더 야만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바로 악법이다.
김 의원에게 적용된 정치자금법은 비현실적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악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간해선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위선적인 그 법을 만든 것도 김 의원이 몸담고 있는 정치권이다. 그렇다면 김 의원이 고발한 우리 사회 야만의 원천은 다름 아니라 국민을 기만하는 입법을 한 정치권이다. 그리고 김 의원 스스로가 그 법을 위반한 사실을 고백했다. 이를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웃음거리가 됐다고 말한 것이 김 의원을 자극한 듯하나 정치권의 앞뒤가 맞지 않는 정치자금법 논리에 정작 웃음거리가 된 것은 국민이 아니겠는가.
임 채 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