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생계비관형 자살이 최저 수준 이상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대로 구실을 못하는 허점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자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조차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적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준이 까다로워 생활보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140만명에 이른다고 추산할 정도여서 제도 개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학계는 이들 140만명 외에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는 잠재적 빈곤층이 180만명에 달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 빈곤층이 3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적용받는 빈곤층은 130만명이다.
부양의무자 조건=생활보호 혜택을 받으려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 능력이 없어야 한다. 부양의무자는 위로는 증조부모와 고조부모, 아래로는 증손자녀와 고손자녀 등으로 한계가 없다. 며느리와 사위는 물론 함께 사는 형제자매도 포함된다.
그러나 학계는 조부모와 손자녀, 형제자매 등은 부양의무자에서 빼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기초생활제도평가센터 소장은 가족해체 현상이 가속화되고 부모 자식만 사는 핵가족이 보편화된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민중연대와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는 직계 혈족의 며느리와 사위도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빈곤문제연구소 유정순() 소장은 장기적으로는 부양의무자 조건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출가한 딸이 부모를 도울 능력이 모자라는데도 딸의 소득을 근거로 일정한 부과율로 부양비를 추정해 부모의 기초생활보장 선정 여부를 판정하는 것도 불합리하다며 이를 실제로 주는 부양비로만 계산하거나 부과율을 세분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소득환산율 적정화=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각종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소득인정제를 적용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정하고 있다. 환산율은 집과 토지 등 일반재산은 월 4.17%, 현금 예금 적금 등 금융재산 월 6.26%, 승용차 월 100%이다.
당초 복지부는 소득인정제 적용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2만명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지난해 평균치보다 오히려 4만여명 줄었다.
학계는 집 등 일반재산의 환산율이 연간 기준으로 하면 50%가 넘어 결국 집을 판 돈의 절반으로 생계를 꾸려가라는 말과 같다고 지적한다.
이태수() 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저소득층의 집이나 토지는 환금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승용차의 경우 차량 가격의 100%를 월 소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폐차 직전인 70만원짜리 승용차가 있으면 연간 소득이 840만원인 것으로 본다. 게다가 차량 가격만으로도 2명 가구의 최저생계비인 월 59만원을 넘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될 수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승용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바꿔 환산율을 일반재산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진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