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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9 •11 아이러니

Posted September. 09, 200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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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영국 런던 한복판에선 세계 무기 엑스포가 열린다. 세계 유수의 무기상인들이 고객들을 초청해 마련한 국제 방위시스템 및 장비(DSEI) 행사다. 첨단무기를 사겠다고 모인 국가 중엔 미국과 관계가 냉랭해진 시리아가 있다. 결코 평화롭지 않은 콜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케냐도 빠지지 않는다. 이들에 가장 많은 무기를 파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영국이 그 다음이고. 이렇게 거래된 무기로 1990년대만 해도 40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90%가 군인 아닌 민간인이다. 공교롭게도 3000여명의 민간인이 테러에 희생된 911 2주년에 무기 파티가 열리는 데 대해 주최측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했다고 영국 옵서버지가 전한다. 한쪽에선 무고한 희생자를 추모하는데 다른 쪽에선 무고한 희생자를 또 만들려 하다니 아이러니컬하다.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을 아이러니라고 할 때 911테러가 낳은 아이러니는 이뿐이 아니다. 2년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를 뿌리 뽑겠다고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테러는 외려 확산됐다. 발리 리야드 나자프 등에서 억울하게 죽은 인명이 1000명이 넘는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잡히지 않았는데 테러를 일삼는 또 다른 오사마 빈 라덴만 수없이 만든 셈이다.

둘째는 기름값이다. 석 달 전까지만 해도 영국 내각의 일원이었던 마이클 미처 전 환경장관은 911은 미국이 세계 제패를 하려는 구실을 만들려고 의도적으로 방조한 테러라면서 이라크전쟁도 미국과 영국의 석유 욕심 때문에 벌인 것이라고 폭로했다. 이 말이 맞다면 지금쯤 기름값은 내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라크에선 석유관이 불타고 미국에서는 기름값이 자꾸 오른다고 아우성이니 별일이다.

결정적 아이러니는 911 테러를 둘러싼 언어들이 그 본래의 뜻과는 반대로 쓰이게 됐다는 점이다. 테러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애국법은 이민자뿐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세계인의 가슴에 출렁대는 애국심은 저마다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타국과 타민족에 위해를 가하는 걸 서슴지 않게 했다. 이슬람의 성전은 테러와 동의어로, 영국의 진실부는 정보조작국으로, 미국의 이라크전 종전 선언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하긴 2년 전만 해도 평화와 인간애에 대한 갈구로 가득 찼던 미국이 맹렬한 일방주의를 거쳐 이젠 유엔과 다른 나라에 손을 벌리고 있으니, 앞으로 또 어떤 아이러니가 펼쳐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