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국제선 항공기를 타 본 사람들은 승무원이 나눠주는 손바닥만 한 종이봉투를 기억한다. 겉면엔 체인지 포 굿(Change For Good)이라고 쓰여 있다. 좋은 일에 쓸 테니까 해외여행 중 쓰고 남은 잔돈이 있다면 넣어달라는 것이다. 잔돈은 주로 동전이다. 이렇게 모인 돈이 작년 한 해에만 4억5400만원에 달했다. 이 돈은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해 불우아동 돕기에 쓰인다. 외국 동전은 지폐와 달라 가지고 들어와도 환전이 안 된다. 아주 희귀한 동전은 기념으로 보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서랍 한 구석에서 뒹굴게 마련이다.
유니세프는 2001년부터 인천공항 분수대의 동전을 수거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동전은 거의 전부가 한국 동전이다. 한국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는 외국인들이 행운을 빌면서 던진 동전들이다. 유니세프는 일주일에 한 차례씩 이 동전들을 건져다가 역시 불우아동 돕기에 쓴다. 한 회 수거액이 평균 20만원쯤 되는데 관광철이면 60만원에 달할 때도 있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 유니세프 건물에 가면 현관 입구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물에 젖은 동전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루를 꼬박 말려야 물기가 완전히 제거된다고 한다.
유니세프의 동전 수거는 그 자체로도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 한국은행이 동전을 찍어내기 위해 1년에 쓰는 돈만 354억원에 이른다. 동전이 돌고 돌아야 할 텐데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으니까 해마다 찍어낼 수밖에 없다. 10원짜리 동전 1개의 주조비용은 40원이라고 한다. 한국은행이 창립 이래 찍어낸 동전은 총 134억개. 국민 한 사람당 279개꼴이다. 옛날 어느 재상이 반 토막 난 한 냥짜리 동전을 두 냥을 들여 붙였다는 고사도 있다. 하인이 그 어리석음을 비웃자 재상이 그냥 버리면 한 냥의 국가 재산이 사라지지만 붙여서 쓰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던가.
광주 서구청의 환경미화원 두 사람이 5년 동안 길거리 청소를 하면서 주운 동전 7만9101원을 태풍 매미의 이재민을 위해 내놓았다는 보도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전화로 하루에 도대체 몇 개나 주웠느냐고 물었더니 액수로 따지면 100원 정도 된다고 했다. 10원짜리는 물론 1원짜리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주운 동전을 돼지저금통에 모았다는 것이다. 부처님께 등불을 올리기 위해 인도 마가다국의 가난한 노파 난타가 동전 두 닢을 얻어다가 기름을 샀다는 빈자일등()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이 재 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