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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죄송해요"

Posted February. 20, 20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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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혈압이 문제되지 않을 만큼 건강하셨는데 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제 탓인 것 같았습니다. 훈련이 끝나면 안부전화를 드릴 생각입니다.

20일 오전 초보 감독 신영철(41)은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17일 LG화재 감독으로 전격 발탁된 신영철 감독은 숨 돌릴 틈도 없이 18일부터 바로 선수들과 맹훈련에 들어갔다. 눈앞에 닥친 대전(5차) 투어에서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플레이오프 진출이 위태로운 상황이기 때문. 선수들과 상견례를 겸한 식사 자리도 아직 갖지 못했다.

모든 게 바늘방석. 이런 가운데 날아든 평생의 스승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49)의 병원행은 신영철 감독을 곤혹스럽게 했다.

18일 오전 이임 인사를 위해 친정인 삼성화재 체육관을 찾았을 때 스승이 남긴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한데 병원행이라니. 지도자는 외롭다. 강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지 않았던가.

며칠 안됐지만 감독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벌써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 모든 짐을 9년째 선생님 혼자 지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자식 낳아봐야 부모 마음 안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길을 찾아 나선 마당에 뒤돌아 볼 수 없다. 17년 동안 선수로, 그리고 코치로 신치용 감독에게 배웠지만 이제부터는 경쟁자로 마주서야 하는 운명이다.

현재 LG화재의 상황은 최악. 4차 투어까지 단 한 차례 4강에 진출한 부진한 성적으로 5위(승점 7). 선두 삼상화재(승점 32)는 물론 2위 현대캐피탈(승점 11)까지 4강행을 굳힌 가운데 대한항공(승점 9) 상무(승점 8)와 종이 한 장차 승부를 벌이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LG화재가 라이벌 팀의 코치를 시즌 중 사령탑에 앉히는 무리수를 둔 것도 이 때문.

이런 분위기를 알기에 신영철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삼성화재를 극복하겠다고 공언했다. 신영철 감독의 첫 목표는 올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제가 아무리 잘해도 삼성화재는 선생님의 팀입니다. 내 팀을 갖고 싶었습니다.

보장된 미래를 박차고 나온 초보 감독은 언제쯤 스승을 극복하고 지도자로 일가를 이룰 수 있을까. 배구판의 관심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김상호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