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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프랑스식 혼란 극복

Posted March. 17, 200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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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초조했다. 의회 다수당인 사회당의 일부 의원들이 탄핵 발의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 시장 시절 부패 의혹으로 법원의 소환 요구를 받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들어 이를 거부하자 사회당 의원들이 탄핵 카드를 꺼낸 것. 그런데 발의를 위한 의원 서명 작업이 시작되자 시라크 대통령의 정치 라이벌인 사회당 지도자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앞장 서 이를 막았다. 탄핵이 궁지에 몰린 정적()에 대한 정치공세로 비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조스팽 총리도 2002년 대선이 다가오자 자제력을 잃었다. 여야 동거 정부 체제에서 내정을 총괄하는 총리의 지위를 이용해 선심정책을 남발했다. 페르 리오넬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프랑스어로 산타클로스를 뜻하는 페르 노엘과 발음이 비슷한 데 착안한 말이다. 그러자 돈줄을 쥔 로랑 파비위스 경제재무장관이 제동을 걸었다. 파비위스 장관은 정부에 숨겨진 금고가 있는 게 아니다며 조스팽 총리의 퍼주기를 막았다. 파비위스 장관은 사회당 소속이자 조스팽 총리가 발탁한 인물이다.

결국 조스팽 총리는 불명예 퇴진했다. 대선 1차 투표에서 의외로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에 밀려 3위를 했기 때문. 1차 투표 1, 2위 가운데 대통령을 뽑는 결선투표에 극우파인 르펜 당수가 나가게 되자 국민은 경악했다. 언론들은 프랑스 민주주의에 조종()이 울렸다고 경고했다. 전국에서 극우파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결선투표 결과는 시라크 후보의 압승이었다. 1차 투표 득표율이 20% 미만이었던 시라크 후보는 82.08%를 얻어 명실상부한 프랑스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정치인이 부패한 직업이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정치 투명성도 영미나 북유럽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필요할 때 자제할 줄 아는 정치 지도자, 지도자가 막 가자고 할 때 막아서는 내부 반대자가 있다. 무엇보다 위기가 닥치면 단결하는 국민이 있다. 이들이 있기에 자칫 국가적 혼란으로 치달을 수 있는 정치 위기가 닥쳐도 극복한다. 그런 정치인이 참으로 아쉬운 때다.

박 제 균 파리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