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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물의 패러독스

Posted March. 30, 200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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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사방이 물이로되 마실 수 있는 건 한 방울도 없으니. 전설적인 새, 앨버트로스를 죽인 죄로 천벌을 받는 늙은 뱃사람은 이렇게 절규했다. 영국 낭만주의 시대를 연 시인 새뮤얼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에서다. 물처럼 흔한 것도 없지만 물처럼 중한 것도 없다. 성경과 코란 등 동서고금의 경전이 물을 생명의 원천이요, 파멸과 회생의 상징으로 표현한 것도 이 같은 물의 패러독스 때문이다.

기름보다 물이 귀한 중동에선 물이야말로 지역분쟁의 감춰진 원인이자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꼽힌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1967년의 6일 전쟁도 시리아 기술자들이 우리한테서 물줄기를 빼돌리려 해서 터진 것이라고 했다.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갈등도 물과 기름이 큰 원인이다. 기름은 수입할 수 있으나 물은 그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이스마엘 세라젤딘 세계 물위원장은 21세기 전쟁은 물 때문에 일어날 거라고 경고했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물만큼 물 쓰듯 쓸 수 있는 자원도 없다. 지구의 물 97%가 바닷물이고 나머지 담수 중 2%가 빙산에 갇혀 있지만 잘만 다스리면 나머지 1%만 가지고도 인류가 사는 게 가능하다. 빗물에서 강물로, 바닷물로, 그리고 수증기로, 물은 지구 탄생 이래 지금까지 그 양 그대로 끊임없이 오묘하게 순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물이 필요한 곳곳마다 있지 않거나 경제 논리와 달리 너무 싸게, 또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허비된다는 데 있다.

제주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환경계획(UNEP) 특별총회의 핵심 의제가 물과 위생이다. 세계 인구 중 3분의 1이 위생적인 물을 먹지 못하고, 하루 5000여명의 영아가 물이 없어 죽어 간다. 소말리아 짐바브웨 등과 함께 물 부족 국가에 속하는 우리나라도 더 이상 물을 물로 볼 게 아니다. 각자 아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물먹는 하마인 농업관개시설의 개선이나 수자원 개발 등 철저한 치수 대책에 나서는 게 필수적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제일 흔해 보이는 게 실은 제일 귀한 것이며, 생명의 원천이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물과 삶의 패러독스를 깨닫는 일인 듯싶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