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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의 애국심 잊지못해

Posted April. 19, 200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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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은 내 가장 좋은 친구였지. 다정다감했고 의리가 있었어. 우린 베를린에서 늘 웃으며 만났고 베를린 시내를 함께 뛰면서 컨디션을 조절했었지. 난 손기정에게 아주 강인하게 생겼다 했었지. 결국 그는 우승했어.

보스턴의 영웅 존 A 켈리(96)는 68년 전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회상하며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켈리 옹은 고 손기정 선생이 금메달을 획득한 베를린올림픽에서 미국대표로 출전해 18위를 했던 선수. 레이스가 끝난 뒤 손 선생에게 운동화를 내게 주게나. 그러면 나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네라며 손 선생이 신고 뛰었던 신발을 얻어 갔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1935년과 1945년 보스턴마라톤에서 두 번 우승했고 1992년까지 61회 출전(58번 완주)해 2위 7번, 톱10에 18번이나 든 보스턴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제108회 보스턴마라톤 개막 하루 전인 19일 보스턴시 페어몬트 코플리 플라자호텔에서 켈리 옹을 만났다. 지나가는 시민들마다 안녕하세요. 우리의 영웅 켈리씨라며 아는 체를 했고 그는 이에 일일이 손을 들어 답례했다.

손기정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Me Korean, not Japanese)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지.

그는 손 선생의 뜨거운 애국심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운동화를 달라고 했던 것은 신발이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가락이 구분돼 있었고 아주 가벼웠기 때문이야. 손기정이 나중에 다시 두 켤레를 보내줘 잘 신었어. 손기정이 신었던 신발도 다 떨어질 때까지 신고 버렸어.

보스턴마라톤 조직위(BAA) 글로리아 G. 래티 부회장은 베를린올림픽때만 해도 미국산 운동화는 무거웠기 때문에 미국선수들은 다른 나라 선수들이 가벼운 신발을 신고 있으면 달라고 했다. 아마 켈리씨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베를린에서 귀국한 뒤 손기정에게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하라고 4번이나 편지를 썼어. 손기정은 나중에 훌륭한 선수들 데리고 와서 또 우승을 시켰으니 지도자로도 성공한 셈이지.

손 선생은 켈리 옹의 권유로 47년(51회) 서윤복을 보스턴마라톤에 출전시켜 세계기록 우승(2시간25분39초)을 일궈냈다. 또 50년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을 1, 2, 3위에 입상시켜 한국마라톤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2년 전 손기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슬펐지. 하지만 그게 인생이야. 우리가 다시 태어나 또 만난다면 역시 좋은 친구로 지낼 거야. 그러나 다시 레이스를 할 땐 나도 만만치 않을 걸.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켈리 옹의 목소리는 정정했다. 그는 84세 때 마지막으로 보스턴마라톤을 뛰었고 이후엔 대회 때마다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