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쪼개지는 듯한 커다란 굉음과 함께 솟아오른 시커먼 연기가 용천역 인근 지역을 뒤덮었습니다.
23일 중국 국경도시 단둥()에서 만난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목격자들은 놀란 가슴부터 쓸어내렸다. 용천역과 단둥 사이는 채 20km가 되지 않는 거리. 지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단둥의 표정에서는 용천역의 사고가 좀처럼 감지되지 않았다. 물자를 실은 트럭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북한을 향했고, 북한 일일관광도 변함없이 이뤄진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북한인들이나 조선족들은 용천역 사고현장 주변에서 보거나 들은 얘기를 전하면서 북측이 사고 발생 사실 자체를 통제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폭발 순간=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1921일)을 마치고 특별열차로 용천역을 지난 지 9시간여가 지난 22일 정오경.
김 위원장의 열차가 역을 통과한 뒤라 용천역 관계자들은 비상상황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있던 시간이었다. 용천역 운전반(지령실)은 김 위원장의 열차 통과를 위해 역 바깥으로 소개시켰던 화물열차들을 재배치하기 위해 조차공(선로교체 담당자)과 기관사들에게 분주하게 지령을 내렸다.
용천읍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고막이 터질 듯한 폭발음이 나면서 LP가스를 실은 화물열차에서 시뻘건 불덩이와 함께 검은 구름이 뿜어져 나왔다.
하늘 높이 치솟은 파편이 북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신의주 일대까지 날아갈 정도로 폭발은 강력했다.
역 주변 상가와 아파트가 허물어지고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 인근 보위부 건물과 학교 등 4개 동의 건물은 완전히 붕괴됐다. 붕괴된 학교는 역에서 약 200300m 떨어져 있다. 수업 중이던 학생들과 주민 상당수가 무너진 건물에 깔렸고 누런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다.
용천역 인근에 밀집한 주택가의 모습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집 밖으로 뛰쳐나온 주민들은 전쟁이 난 줄 알고 허둥대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읍내 곳곳에 폭발의 흔적으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용천역 일대는 융단폭격을 받은 직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봉쇄된 용천역=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중국 국제열차는 이날 오전 7시반경 단둥역에 도착했다. 평소대로라면 오전 9시반경 압록강 철교를 통해 신의주로 넘어가야 하지만 폭발사고 때문에 단둥역에서 한동안 정체했다가 북한을 향해 출발했다.
단둥에서 만난 한 무역상은 압록강을 넘은 중국 국제열차는 용천역이 아니라 남신의주역에서 피현군 백마노동자구 방향으로 코스를 바꿔 이동했다고 전했다.
용천역 사고 여파 때문인지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는 차량도 뜸해졌다. 주말을 앞두고 차량행렬이 줄지어 섰던 평소와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사람의 이동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고 수습 노력=북한 당국은 사고 발생 직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며 용천읍 일대의 출입을 막았다. 폭발사고로 국제전화선도 단절됐다.
북한 방송과 통신은 폭발사고 소식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결과와 멕시코에서 김정숙 교육문화연구소조가 결성됐다는 소식만 주요 뉴스로 내보냈다.
사상자들은 사고 직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료장비 및 운반 차량 부족으로 신속하게 처리되지 못했다. 중국은 북한의 사고 소식이 전해진 직후 즉각 지원 의사를 표시했다. 단둥의 병원들도 북한에서 미처 수용하지 못한 환자를 받을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북측으로부터는 아직 반응이 오지 않고 있다.
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