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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케이프 페닌슐라

Posted June. 16, 20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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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발견한 땅이 신대륙임을 몰랐고 결국 이 땅은 훗날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불리게 된 사실. 유럽인 최초로 아프리카대륙 동편 인도양의 실체를 확인해 인도항로 개척의 문을 열어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폭풍곶(Cape of storm)이라고 부른 두 바다(대서양 인도양)의 접점이 희망곶(Cape of Good Hope)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바뀐 사실. 그리고 하나 더. 희망곶이 우리에게는 희망봉이라고 불리게 된 것.

죽은 콜럼버스가 억울해하고 디아스가 거칠게 항의할지 모를 일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 그 어떤 것도 역사에 편입되면 누구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것이 역사니까.

그러나 희망곶이 희망봉이 된 연유는 현장을 보니 유추할 수 있었다. 희망곶은 해안의 평지다. 봉우리가 있다면 근처의 케이프 포인트뿐. 87m 높이로 깎아지른 이 해안절벽의 오해인 듯싶다. 왜냐하면 서양인들도 이곳을 희망곶으로 오해하고 있으니.

이른 아침 케이프타운 시내를 출발해 희망곶을 향했다. 서해안으로 남행해 땅끝을 돈 뒤 다시 동해안으로 북행해 케이프타운에 돌아오는 하루 일정(총 200km)이었다. 도중에 해안의 마을도 들르고 테이블마운틴 기슭의 수목원도 들르는 코스다.

역사의 희망이 된 희망봉 펭귄 물개 즐비

이프타운부터 희망곶까지의 지형은 반도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반도다. 서쪽은 대서양, 동편은 인도양 등 두 대양을 거느린 반도다. 이 반도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잘 어울려 산다. 집 앞 해변은 펭귄의 보금자리이고 마을 앞 만()의 돌섬은 물개 수천마리의 안식처다.

희망곶의 덤불초원에서는 오스트리치(타조 종류)를 만나고 산악의 도로에서는 바분(원숭이 종류)도 만난다. 캘리포니아 분위기의, 전혀 아프리카를 닮지 않은 아프리카. 거기가 남아공의 땅끝을 차지한 케이프 페닌슐라 국립공원이다.

두 대양의 반도는 양쪽 해안의 멋진 바다 풍경을 음미하는 해안 드라이브 여행이 제격. 곳곳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도 보이고 바다 풍광을 즐기며 와인을 홀짝이는 경치 좋은 레스토랑이 보인다. 누구나 한번쯤 살고싶은 충동을 느끼는 지상의 천국같은 곳이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블랙 마를린이라는 바닷가 언덕의 식당에서 만난 한 영국인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포겟 잇(Forget it잊어버려요).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도로(몬테레이 반도산타모니카)와 비교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듯 단호했다.

반도(케이프 페닌슐라)의 북단 시 포인트(Sea Point). 해안 드라이브의 출발점이다. 여기 서해안의 아침 안개는 유명하다. 남극으로부터 북상하는 한류 때문인데 안개 속에 드러나는 산기슭(왼쪽)과 바위해안과 흰 모래 해변의 바다(오른쪽) 풍경은 기가 막히다. 이어 도착한 샌디베이. 유일한 누드비치로 이런 자연 속에서라면 벗고도 남을 듯했다.

산기슭 휘감은 해안도로엔 안개가 피어오르고

프먼스피크(해발 592m)라는 봉우리가 우뚝 선 후트 베이 해안. 바다로 잦아드는 산기슭의 허리를 감아 도는 해안도로가 멋지다. 이 길로 남행하면 희망곶. 희망곶의 희망에는 이런 바람이 담겨 있다. 유럽 동편에 있다는 미지의 세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고자 하는 바람이다.

배가 최고 교통수단이던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인 디아스의 업적은 위대하다. 인도로 데려다 줄 새 바다를 찾아낸 것(1488년)이다. 그리고 10년 후. 인도항로는 바스코 다가마에 의해 개척된다. 물론 그것이 인도와 아시아에 대한 식민 침탈의 신호탄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두 대양의 접점인 이곳. 한류와 난류의 충돌 현장인 이곳에는 늘 강풍이 분다. 이 바람에 땅끝 주변은 침식이 심해 황량하다. 평원에는 한가로이 오스트리치가 오간다. 사실 디아스가 찾은 희망곶은 대륙 남단이 아니다. 정확히는 서남단이다. 진짜 남쪽 끝은 여기서 동쪽으로 250km 거리의 케이프 아굴라스다.

그러나 역사는 디아스에게 아량을 베푼다. 희망곶 동쪽으로 2km쯤 떨어진 해안절벽 케이프 포인트를 대서양과 인도양의 접점으로 정한다. 케이프타운으로부터 60km, 케이프 페닌슐라의 땅끝이다.

그런데 이런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행객들은 케이프 포인트를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이라고 믿고 돌아간다. 디아스의 위대한 착각. 그것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 그것도 역사이기 때문일까.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