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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생 1위로 골인

Posted August. 08, 200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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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생(Koreanischer Student)이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그 한국인(Koreanische)은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그가 이제 트랙의 마지막 직선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승자 손이 막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가 당시 남자마라톤 레이스를 장내에 공식 중계방송하면서 고 손기정() 선생을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지칭한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본보가 최근 입수한 독일역사박물관(DHM) 독일방송기록보관실(DRA) 자료에 따르면 조직위측은 12만 관중이 운집한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장내 마라톤 중계에서 손기정 선생을 한국 대학생(실제 양정고보 5학년) 한국인으로 표현했다.

일제강점기에 출전한 손 선생은 그동안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가 작성한 공식문서엔 일본 대표 기테이 손으로만 표기돼 있었다.

지금부터 꼭 68년 전인 1936년 8월 9일 열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엔 27개국 56명의 선수가 출전했으며 1932년 열렸던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챔피언인 후안 카를로스 사발라(아르헨티나)가 선두로, 손 선생은 34번째, 고 남승룡 선생은 49번째로 주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당시 마라톤 실황중계는 2시간40분 가까운 레이스 내내 이어졌으며 이번에 본보가 입수한 자료는 이를 3분20초 분량으로 편집한 CD자료다.

다섯 개의 그룹 중 일본팀은 첫 번째에 있습니다. 그들은 한번도 올림픽에서 뛰어보지 않은 신예들로 이름은 남(남승룡), 시오아쿠(염전 인부 출신의 일본선수30km지점에서 기권), 손(손기정)입니다. 일본팀 감독의 말로는 손을 이기려면 태양이 작열하든, 비가 오든, 자갈밭이든, 풀밭이든 초인적으로 뛸 수 있어야 한답니다. 손이 결국 우승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손 선생은 당시 29km 지점에서 사발라를 제치고 선두에 나서 결승선까지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단독 질주했으며 사발라는 32km지점에서 기권했다.

그는 생전에 당시에는 뒤돌아보는 것이 비겁한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창희 김화성 insight@donga.com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