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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양궁 '신과의 전쟁'

Posted August. 09, 200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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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태양, 바람과 맞선다.

108년 만에 다시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을 노리는 양궁 선수단이 그리스 신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태양의 신 아폴론과 바람을 일으키는 포세이돈이 상대. 공교롭게도 양궁 본선 라운드가 열리는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은 파르테논 신전과는 지척의 거리다.

아폴론은 제우스의 아들이자 수많은 신 중에도 가장 뛰어난 외모로 님프와 인간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2인자. 궁술과 예술, 음악과 의술을 관장한다. 그러나 아폴론은 이곳 아테네에서 현지 적응에 여념이 없는 우리 선수들에겐 짓궂기 짝이 없는 얄미운 신이다. 여자 선수들에겐 더욱 그렇다.

선수들은 최근 강화된 약물 규정에 따라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강렬한 태양광선 아래서 선 블록 크림마저 바르지 못한 맨 얼굴로 훈련과 실전을 치러야 한다. 비록 피부 크림이지만 약물 양성반응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실제로 지난달 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대표팀의 한 선수가 선 블록 크림이 문제가 돼 곤욕을 치렀다.

올림픽 양궁 사상 최초가 될 2관왕 2연패를 노리는 윤미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쁜 얼굴이 훈련 하루 만에 새까맣게 변해 버렸기 때문.

세계 최강 한국을 겨냥한 표적 약물 검사도 녹록치 않다. 서울에서 윤미진 장용호 박경모가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1차 테스트를 받았고 이곳에선 박성현이 양궁에서 첫 번째로 혈액 테스트를 받았다. 궁술과 의술은 모두 태양신 아폴론의 몫. 이래저래 아폴론이 한국 선수단에겐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다른 적인 포세이돈은 제우스와 함께 신전의 최고 연장자지만 난폭하며 화를 잘 내는 바다의 신. 바람과 비, 파도를 부르는 삼지창 트리아이나를 갖고 있다.

포세이돈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해안도시 아테네의 심한 바람 때문. 예선 라운드가 벌어지는 데켈리아 경기장에서 만난 서거원 남자 감독은 정조준을 하면 표적판의 2,3점대 위치까지 화살이 빗겨날 정도로 바람이 심하다. 또 좌우 앞뒤로 일정치 않은 일명 지랄 바람이라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64강전결승전이 열리는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은 바다에 인접해있어 해안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두 쪽으로 나뉘어 있는 관중석을 돌면서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한다.

하지만 이 모든 악조건은 다른 나라 선수단도 모두 겪는 어려움. 결국 한국 양궁이 신화의 도시 아테네에서 벌이는 신과의 전쟁은 자신과의 싸움으로 귀결되는 셈이다.



장환수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