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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희망 불황

Posted August. 10, 200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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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암울했던 서울의 봄 시절 작가 최인호는 희망가와 우리 승리하리라 두 노래를 번갈아 부르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희망가보다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라고 권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로 시작되는 희망가는 제목과는 달리 절망가에 가깝다. 우리 승리하리라는 복음성가 We shall overcome을 번안한 노래다.

나환자 복지시설 성()라자로 마을의 원장으로 30년 동안 헌신한 고() 이경재 신부(19261998)는 1990년대 초 중국을 다녀온 뒤 사회주의는 희망이 없다고 자주 말했다. 어느 복지시설엔 고아는 17명인데 교사와 보모가 80여명이더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한국인들이 옌볜() 등지를 돌아다니며 우리보다 몇십년은 뒤졌다. 고구려 때 만주 일대가 다 우리 땅이었다고 기염을 토할 때였다.

지금 우리 국민은 희망을 갖고 사는가. 이달 초의 한 조사에서 10명 중 7명은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유는 경제 불황(36.2%) 정치 불안(36.1%) 순이었다.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책임은 대통령(41.7%) 여당(21.5%) 야당(11.8%) 순으로 크다는 응답이었다. 3명 중 1명은 기회만 주어지면 이민 갈 의향이 있다고 했다. 경제 불황보다 희망 불황이 더 심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같은 시점 중국사회과학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중국인의 18%는 나는 이미 상류층이라고 답했고 64%는 나도 사회의 상층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희망을 표시했다.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단이 틀려 보이지 않는 요즘의 두 나라 모습이다.

마오쩌둥() 고르바초프 덩샤오핑()을 풍자한 농담이 1990년대 중반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 유행했다. 마오는 좌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했고, 고르비는 우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으며, 덩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쪽 깜빡이를 켜고 어느 쪽으로 회전하는 걸까. 아무튼 좌회전은 무늬만 희망가일 뿐 결코 우리 승리하리라가 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