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중풍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페닐프로판올아민(PPA) 성분 함유 감기약 판금 조치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다른 약의 경우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결정을 즉각 수용했으면서 PPA성분 감기약에 대해서만은 FDA 결정을 수용하지 않은것으로 밝혀졌다.
또 식약청이 FDA 발표 8개월 이후 일정 PPA 함유량 이하의 감기약 판매를 허용하면서도 FDA 경고치를 외면한것으로 드러났다. 적용한 PPA 함유량 기준도 제각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식약청이 PPA감기약 사용금지 결정까지 4년의 시간을 끈 과정에 대해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들쭉날쭉한 식약청의 조치 기준=식약청은 FDA 발표 후 8개월 뒤인 2001년 7월 PPA 함유 의약품 가운데 식욕억제제와 단일제, 하루 최대 복용량이 100mg을 초과하는 의약품에 대해서만 생산 및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하루 최대 복용량이 100mg 이하인 감기약에 대해서는 계속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은 것.
이는 PPA를 하루 75mg 이상 복용할 경우 뇌중풍 가능성이 10배 이상 증가한다는 FDA의 경고치에 비해 25mg 높은 기준치.
식약청 관계자는 12일 왜 허용기준을 100mg으로 정했느냐는 질문에 일본과 영국 등에서 100mg 기준이 사용되고 있어 이를 채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FDA 결정에 대해서는 외국 기관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하기엔 근거가 부족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자체 연구조사 사업을 추진한 식약청이 굳이 유럽과 일본의 기준은 그대로 수용한 이유는 석연치 않다.
이와 관련해 한국제약협회가 FDA 발표 나흘 뒤인 2000년 11월 10일 국내 시판되는 PPA 함유 감기약에는 75mg보다 적은 용량이 들어 있기 때문에 판매중지 조치는 신중하게 해 달라고 식약청에 건의한 것으로 12일 밝혀졌다.
당시 콘택600(유한양행)의 하루 최대 복용량이 80mg 등으로 국내 생산 감기약 상당수의 PPA함유량은 70100mg 사이였다.
결과적으로 2001년 11월 내려진 식약청의 조치는 제약협회의 요구를 전폭 수용한 셈이다.
다른 의약품의 FDA 조치에 대한 대응과의 차이=식약청은 FDA 조치를 수용하지 않고 PPA 성분 감기약의 위해성 연구조사를 실시키로 한데 대해 주체적인 근거가 필요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는 식약청이 선진국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자체적으로 진행한 첫 사례였다.
예를 들어 비염 치료제인 테르페나딘의 경우 미국에서 심장부정맥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FDA가 1998년 테르페나딘 120mg 단일제와 테르페나딘 60mg이 포함된 복합제를 모두 회수 조치하자 식약청은 자체 연구조사 없이 2000년 1월 동일한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화제 성분인 시사프리드도 심장발작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보고에 따라 2000년 초 처방제한 조치가 내려지자 식약청은 같은 해 7월 1차 선택제로 처방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이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테르페나딘과 시사프리드의 경우 감기약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않아 자체 연구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의약품의 효용성은 국가마다 다른 만큼 일률적인 잣대로 설명하기 힘든 점이 많다고 말했다.
건강 사회를 위한 약사회 천문호() 회장은 (식약청의 설명을 인정한다 해도) 외국에서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조치가 있을 경우 우선 이를 준용할지 아니면 자체 연구조사를 실시할지 여부, 약 성분 용량을 정하는 것과 관련한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혼선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태훈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