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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도 88등도 수

Posted October. 08, 200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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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A고 2학년 국어과목의 경우 173명 가운데 1등인 학생과 88등인 학생이 모두 절대평가로 수를 받았다. 강원 B고의 김모양은 175명 가운데 1등을 한 작문과목도 수였고, 72등을 한 수학 과목도 수였다.

이처럼 고교마다 내신 부풀리기가 만연하고 지역별 학교별 학력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와 관련해 일방적으로 대학만 매도하는 것이 무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대 김완진() 입학관리본부장이 7일 대입전형에 고교 학력차를 반영할 수 있는 평가방법을 개발하고 본고사 제도를 일부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내신 부풀리기=지난해 경기 B고의 경우 시험을 본 후 교사가 채점하지 않은 답안지를 다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채점 결과 평균점수가 너무 낮게 나오자 교사가 답안지를 다시 나누어 주면서 일괄적으로 답을 고쳐 쓰게 한 것.

한 학부모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우리 아이가 대학 가는 데 유리하다고 하는데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며 말을 흐렸다.

김모양(17)은 서울 강북구 소재 고교를 다니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의 한 학교로 전학했다. 이전의 학교에서 김양은 상위 5% 이내에 들었지만 현재 학교에서는 상위 20% 수준.

김양은 예전에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수학은 늘 만점을 받았는데 지금은 교과서는 물론 기본정석, 실력정석 문제집에 학원 기출문제까지 다 풀어야 90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은 이전 학교에서는 수학의 정석을 갖고 다니면 친구들이 정석도 공부하냐고 물어보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문제가 어려워도 만점자가 나온다고 전했다.

서울 강북 C고의 한 교사는 시험 때마다 평균점수를 89점으로 맞추는 것이 숙련된 교사의 노하우라며 시험을 어렵게 내면 학부모들이 제자들이 대학을 못가도 좋으냐며 비난한다고 실토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 고교에서 적발된 성적 부풀리기 사례는 시험문제지 사전 유출 4건을 포함해 491개교 1311건이나 됐다.

고교간 학력차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모 대학 입시관계자는 같은 서울에서도 서울대 갈 실력을 가진 학생이 매년 100명 가까이 졸업하는 고교가 있고, 서울대에 겨우 1명 보내는 고교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도 문제 있다=1학기 수시모집은 특정분야에 재능이나 특기를 가진 소수의 학생만을 뽑도록 하는 제도.

하지만 각 대학은 다른 대학에 우수학생을 뺏길까봐 1학기 수시모집부터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경쟁적으로 모집하면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고교는 물론 대학에도 내신 부풀리기에 대한 책임이 있다. 서울대가 학교생활기록부를 석차백분율로 반영하기 시작하자 다른 대학들은 내신성적이 낮아 서울대 전형에서 불리한 특목고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다투어 절대평가를 도입해 내신 부풀리기를 부채질했던 것.

교육부는 책임 없나=수년전부터 대학들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한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교육부가 방관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주요 대학 입학처장들은 2000년 4월 모임을 갖고 2002학년도 대입부터 고교간의 학력차를 전형에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고교등급제는 허용할 수 없으며 학교간 학력차가 존재한다는 근거도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교육부는 내신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2008학년도 이후 대입에서 내신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전환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고교간 학력차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없는 실정이다.



홍성철 손효림 sungchul@donga.com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