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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공포의 선거

Posted November. 02, 20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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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불 사이 어두운 그림자. 늑대 떼가 배회하는 사이로 음습한 소리가 깔린다. 약하면 미국에 해를 끼치려는 놈들을 불러들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공격하는 정치광고다. 케리 후보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기관총이 난사되는 가운데 이라크 무장세력이 부상한 미군을 끌고 가는 흉흉한 광고다. 지금도 미국인은 납치되고, 인질로 잡히고, 참수되고 있다는 내레이션. 2004년 미국 대선을 관통하는 주제는 공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버드대 신경과학자 대니얼 시겔 교수는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했다. 두려움을 느끼면 왼쪽 뇌에 자극이 덜 가서 논리적 사고가 멈춘다는 것이다. 옆에서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 줘도 소용없다. 뇌는 이미 뭔가 의지할 만한 것을 찾는 상태다. 말하는 내용보다는 그 목소리 톤에 더 신경 쓴다. 논리적인 케리보다 부시가 더듬대며, 침을 튀기며 하는 소리에 미국의 보통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버지 여기 있다. 내가 있으니 걱정마라 하듯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는 얘기다.

오사마 빈 라덴이 공포의 메시지를 비디오테이프에 실어 보내기 전, 실제로 빈 라덴을 광고에 내보냈던 것도 부시 쪽이었다. 공화당 지지파인 미국을 위한 진보 그룹은 그의 사진과 테러리스트들의 모습을 넣어 (유약한) 케리가 이 광신적 살인자들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위협했다. 전설적 앵커였던 월터 크롱카이트는 CNN에 나와 머리 좋은 백악관 정치고문 칼 로브가 이 사건을 만들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테러와 전쟁 중임을 일깨움으로써 전쟁 사령관 부시를 부각시키려 했다는 음모설도 나돈다.

공포를 무기로 한 정치광고에 영향을 덜 받는 쪽은 부동층이라고 미시간대 테드 브래더 박사는 말한다. 정당 선호도가 확고하고 후보에 대해 잘 아는 영리한 유권자들이 오히려 흔들린다는 것이다. 일반적 통념과는 다른 연구결과다. 미국인들이 영향을 받든 안 받든 문제는 공포광고를 못 본 지구촌 사람들까지 선거 후의 미국이 무서워진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으로 부시가 되든, 케리가 되든 공포의 세계가 다가올까 봐 두렵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