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개봉된 영화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의 음악 각본(공동) 제작을 맡은 이가 동명의 뮤지컬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웨버라는 사실은 이 영화가 왜 영화적인 대신 뮤지컬적인지를 말해준다. 1986년 이 탁월한 뮤지컬을 내놓은 뒤 로이드웨버는 때마침 영화 로스트 보이(1987년)로 강렬한 시각적 센스와 음악적 이해를 보인 조엘 슈마허 감독에게 이 뮤지컬의 영화 연출을 의뢰했다.
이 영화는 팬텀의 과거 등 약간의 사이드 스토리가 추가됐지만, 뮤지컬을 재해석 혹은 재구성하기보다는 반대로 충실히 복원하려 한다. 뮤지컬과의 차이점이라면, 관람료가 12만 원 안팎(R석의 경우)에서 단돈 7000원(서울의 경우)으로 줄었다는 점과 중간 휴식시간 없이 2시간 26분을 내리 앉아 있어야 한다는 점 정도랄까.
아름다운 목소리로 무명가수에서 일약 오페라 스타가 된 크리스틴은 어두우면서도 천재적 음악성을 가진 팬텀에게 이끌려 지하세계로 종적을 감춘다. 얼굴 반쪽을 가면으로 가린 팬텀의 비밀을 알게 된 크리스틴은 지하세계에서 뛰쳐나오고, 극단 후원자인 젊고 매력적인 귀족 라울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와 분노 속에서 바라보던 팬텀은 복수를 다짐한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서 내용만큼 중요한 건 카메라 워크다. 촬영 테크닉은 뮤지컬을 본다는 사적()이고 3차원적인 경험을 스크린이라는 2차원적이고 복제된 공간으로 옮기는 데 절대적 관건이 된다. 이 영화는 컷을 나누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죽 훑어 내려가는 촬영 방식을 통해 오페라 무대와 지하세계가 갖는 엄청난 공간감을 심리적 크기로 다가오게 한다. 반면 화려한 오페라 공연 장면은 컷을 잘게 나눠 찍음으로써 강렬한 스펙터클과 운동감을 만들어냈다.
원작 뮤지컬의 유명한 레퍼토리들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제값을 한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세트와 의상, 대규모 출연진 등에 들어간 1억 달러(약 1000억 원)의 제작비를 감안하면 이 영화가 의외로 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영화적 강약이나 이야기 구조보다는, 등장인물의 발자국 소리마저 통제한 채 노래에 음향을 집중시킬 정도로 뮤지컬의 문법과 호흡에 충실한 이 영화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뮤지컬에선 창조적인 무대장치에 힘입어 명장면으로 남은 대목들, 예를 들면 극장 내 대형 샹들리에가 관객석으로 떨어지는 장면이나 팬텀의 배가 지하세계를 유유히 나아가는 장면(배는 가만히 있지만 좌우로 늘어선 횃불들이 움직임으로써 전진하는 듯한 착시 효과를 낸다)이 막상 영화에선 이야기 전개의 속도감 속에 묻혀버린 점도 같은 맥락이다. 물랑루즈 시카고 등의 뮤지컬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이 노래에 기대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크리스틴 역의 에미 로섬(투모로우), 팬텀 역의 제라드 버틀러(툼 레이더2:판도라의 상자), 라울 역의 패트릭 윌슨(에인절스 인 아메리카)은 영화의 지명도에 비하면 신인에 속하지만, 젊고 로맨틱하고 매력적인 데다 노래 실력까지 뛰어나다. 다만 뮤지컬과 달리 영화에서는 숙명적이라 할 수 있는 클로즈업을 감당하기에 로섬이 가진 표정의 종류와 내용이 다소 단조로워 보인다. 그녀의 오른쪽 눈 밑 눈물점도 유독 성가신 데다 말이다.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