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반국가 범죄를 가장 무겁게 다룬다. 형법에 따르면 고의적 중()살인죄는 최고형이 사형이지만 국가전복음모죄는 사형 및 재산몰수형에 처한다.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 행위에 대해선 눈곱만큼의 인도주의적 배려도 하지 않는 곳이 북한이다.
북에서 남파된 공작원들은 적화(공산화) 통일 노선에 따라 대한민국 체제를 뒤집으려던 자들이다. 이들 가운데 덜미를 잡혔으나 남한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무리가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의 일부였다. 정부는 그중 이인모 씨를 1993년에, 나머지 63명을 남북정상회담 3개월 뒤인 2000년 9월에 북으로 돌려보냈다. 지난해 10월엔 정순택 씨의 시신을 판문점을 통해 북측 유족에 넘겨줬다. 그때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체제 선전에 활용했다.
바로 이 적화 행동대원들이 6일 10억 달러(약 1조 원)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공동고소장을 남측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으로 보내 왔다. 3040년의 기나긴 세월 남조선의 철창 속에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며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또 이런 악행을 저지른 파쇼 독재 시기의 주모자와 후예들을 역사와 민족의 심판대에 세워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25전쟁 후 납북된 우리 국민은 485명이고, 전쟁 때 끌려가 반세기 이상 생지옥에 갇혀 있는 국군포로 생존자는 546명인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고기잡이를 하다 끌려간 어부와 남침전쟁의 피해자이지만 북 당국은 단 한 명도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우리 쪽만 국가전복을 꾀한 자들을 너그럽게 넘겨줬다가 북한의 한 해 수출액(2004년 10억2000만 달러)과 맞먹는 돈까지 요구받게 됐다.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가 적반하장(도둑이 매 들기)이다. 북한을 탈출한 납북자 4명이 9일 북한 당국을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는 공동고소장을 국가인권위에 낸다고 한다. 두 사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자.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