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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골프 금지 소동

Posted March. 30, 200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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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 빨리빨리를 외칠 때 필리핀 사람은 마냐나(ma~nana) 한다. 내일이란 뜻이다. 내일이 돼 봐야 알 만큼 그들은 느긋하다. 1990년대 말 피델 라모스 대통령이 아시아의 당나귀로 알려진 조국을 호랑이로 바꾸겠다며 시간 잘 지키기 국가 의식 주간을 선포했다. 바로 다음날 대통령은 지각을 했다. 오전 4시에 미국 마스터스 골프대회 TV 중계를 보다가 깜빡 잠든 것이다.

그 뒤 외환위기가 닥쳤다. 세계화의 영향이다, 잘못된 경제정책과 배타적 정치 탓이다, 빈곤과 환경을 외면한 채 성장만 추구해서다 등등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모든 원인을 골프라는 단 두 글자로 요약했다. 정경유착과 한심한 정책들이 골프코스에서 탄생했다는 얘기다. 골프도 대중스포츠로 봐야 한다고 우겨봐야 소용없다. 아직까지는 파워엘리트의 신분을 상징한다. 등산은 되고 골프는 안 되느냐는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말은 그래서 개그 수준이다.

이번엔 우리 정부가 총출동해 골프 개그를 연출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31절 골프 파문으로 물러난 뒤 국가청렴위원회가 공직자들에게 직무관련자와의 골프 금지령을 내린 것이 23일.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의 김남수 비서관은 이를 비웃듯 26일 현대그룹 임원 등과 골프를 쳤고 다음날 이강철 대통령정무특보는 정무적 판단 없는 한건주의라고 청렴위를 비판했다. 청렴위는 닷새 만에 직무관련자란 민간인만을 뜻한다고 물러섰다. 사실상의 금지령 해제다.

도덕성이 존립기반이라는 노무현 정부 사람들이 골프장에서 부정한 일을 한다고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골프 금지령 해프닝은 이 정부의 수준을 보여 준다. 골프에도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정무특보는 정무적 판단에 따라 청와대 코앞에 횟집을 차리는지 묻고 싶다. 공직자 기강을 세운다며 나섰다가 맥없이 주저앉은 청렴위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