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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위한다던 좌파, 경제 파탄시켜

Posted October. 04, 2006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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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2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지하철 2호선 코슈트테르 역을 나오자 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이 눈에 들어왔다.

한낮인데도 학생부터 노인까지 수백 명의 시위대가 의사당 앞 광장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철제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인 국회의사당을 무장한 경찰들이 순찰했다. 9월 17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번 시위는 1989년 공산주의 정권 붕괴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라고 한다.

바리케이드에 걸려 있는 팻말과 깃발에는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는 페렌츠 주르차니 총리의 사퇴 요구와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묻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헝가리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은 5월에 주르차니 총리가 사회당 비공개회의에서 한 정부는 지난 4년간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밤낮으로 거짓말만 했다는 발언이 넉 달이 지난 9월 17일 한 라디오방송을 통해 뒤늦게 공개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거듭된 경제실정()에다가 총리의 거짓말 실토까지 겹치자 국민의 분노는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주르차니 총리가 복지 확대를 내세워 집권한 2004년에 5%대였던 실업률은 현재 7.5%로 껑충 뛰었다. 올해 재정적자는 헝가리 국내총생산(GDP)의 10.1%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이 요구하는 재정적자 기준(국내총생산의 3%)의 세 배 이상이어서 2011년 유로화 도입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주르차니 총리는 최근 2009년까지 재정적자를 GDP의 3%대로 줄이기 위해 임금삭감, 공공요금 30% 인상, 부가세 인상, 무상 고등교육 및 의료서비스 폐지 등 일련의 긴축 정책으로 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한다는 야노시(34) 씨는 부다페스트 시민 대부분은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며 서민을 위한다던 좌파 총리는 그동안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거짓말만 해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광장에서 케밥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때우던 대학생 머자로시(21) 씨는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반겼다.

국영방송을 비롯해 대다수 헝가리 국내 언론은 정부의 압력으로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외신들만이 실상을 제대로 보도하고 있다며 Thank you, CNN(미국 뉴스채널)이란 피켓을 치켜들었다.

오후 5시를 넘어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코슈트테르 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시가 작다 보니 걸어서 광장으로 모이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오후 7시가 되자 광장은 수천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민들은 곳곳에 불을 피웠다.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맞춰 총리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도 외쳤다.

다만 우리나라 시위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머리띠와 단체복장은 없었다. 기타를 둘러메고 새끼손가락 굵기의 장신구를 귀에 달고 있는 히피 청년부터 중절모자의 나이 지긋한 노신사까지 시위에 참가했다.

높은 청년실업률을 반영하듯 2030대 청년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이들은 시종일관 시위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이번 시위는 과거 시위보다 과격한 경향을 띠기도 했다.

다만 9월 20일 전후와 비교하면 시위대 참여인원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폭력성도 많이 누그러진 편이다. 10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찰 당국의 진압 강도가 세진 데다 장기간의 시위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시민은 말했다.

56세로 보이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한 여성은 광장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아이들에게 현실 공부를 하게 하려고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가 관광의 도시다 보니 과격한 시위로 관광객들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 벨그라드 거리에서 7년째 숙박업을 하고 있는 송인선(48여) 씨는 옛 소련에서 해방된 뒤 헝가리 시위는 손을 맞잡고 국회의사당을 에워싸는 식의 평화적인 방법이었는데 이번엔 다르다며 차량을 불태우는 등 폭력성이 날로 심해져 한국인 관광객들을 국회의사당 근처로 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 국회 앞 광장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이 나라의 민심은 결국 선거에서 집권세력의 참패로 이어졌다. 1일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제1야당인 청년민주연맹(피데스)이 19개주 가운데 18곳, 23개 대도시 중 15곳에서 승리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