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가 배출한 최고 스타인 이승엽(30사진). 그는 번번이 일생을 건 선택의 기로에 서곤 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잔류와 메이저리그 진출을 두고 서른 살의 이승엽은 결국 요미우리를 택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왼쪽 무릎 통증으로 13일 수술을 받은 이승엽은 완전치 않은 몸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
남은 것은 계약 기간과 조건이다. 이승엽에겐 또 한 번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다.
요미우리가 바라는 대로 3년 정도의 장기 계약을 하면 10억 엔(약 80억 원) 이상의 거액을 받을 수 있다. 만약 메이저리그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면 1년 계약을 하고 이후는 메이저리그에 가겠다는 옵션 계약을 하면 된다.
신기하게도 이승엽의 선택엔 항상 운이 따랐다. 이승엽이 거포가 된 것도 잘 한 선택의 결과다. 그의 역대 선택 시리즈를 살펴본다.
선택1(삼성>한양대)
1995년 경북고를 졸업한 이승엽은 프로와 대학의 갈림길에 섰다. 이승엽은 삼성을, 아버지 이춘광 씨는 한양대 진학을 원했다. 이승엽은 일부러 수능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았고, 아버지는 섭섭함에 눈물을 쏟아야 했다.
처음 입단할 때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그런데 팔꿈치가 좋지 않아 수술을 받았고, 재활 중에 우연찮게 방망이를 잡았다. 당시 박승호 타격 코치(현 KIA 코치)가 딱 한 달만 타자를 해보라고 권했는데 이것이 홈런 타자 이승엽이 탄생한 시초가 됐다.
선택2(일본 롯데>삼성)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운 2003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무대를 노크했으나 실패했다. 삼성은 상처 받은 이승엽을 감싸 안으려 했다. 100억 원에 이르는 몸값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일본 롯데가 영입 제의를 했고, 이승엽은 고심 끝에 롯데를 택했다. 온갖 감정이 사무친 나머지 이승엽은 롯데 행을 발표하는 순간 펑펑 울었다.
선택3(요미우리>롯데)
2004년 부진했던 이승엽은 2005시즌에는 30홈런을 치면서 부활했다. 일본 롯데는 당연히 재계약을 원했다. 그러나 이승엽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었다. 최고 명문 요미우리에서 활약한 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마쓰이 히데키가 표본이었다. 2억 엔에서 1억 6000만 엔으로 연봉이 깎이면서도 이승엽은 요미우리를 택했다. 그리고 4번 타자 자리를 꿰찬 뒤 타율 0.323에 41홈런, 108타점의 맹활약을 펼쳤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