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의 10cm를 잃었지만 나눔과 봉사란 단어가 제 다섯 발가락을 대신하고 있어요.
1972년 동아마라톤대회 참가 이후 35년 만에 3월 18일 서울에서 열리는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에 다시 참가하는 호주 교포 박종암(55) 씨는 마라톤을 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키 181cm의 건장한 체구였다.
고등학생 때 전국육상선수권대회 5000m 경기에 출전했을 정도로 육상에 소질이 있었던 박 씨는 마라톤도 좋아해 풀코스만 16번을 완주했다.
하지만 지금의 박 씨는 오른발이 발가락을 포함해 3분의 1가량 절단된 2급 산업재해 장애인이다. 그의 왼쪽 운동화 사이즈는 290mm이지만 오른쪽은 190mm다.
박 씨는 1981년 호주로 기술이민을 가 다국적 정유회사에 근무하면서 현장 공사 감독을 담당했다. 육상선수로 활동했고 직장에서도 축구선수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건강했던 박 씨는 2000년 공사 현장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수십 t의 유조탱크를 들어올리던 크레인 기사에게 무전기로 지시를 내리던 박 씨는 끌어올리라는 말 대신 실수로 내리라고 말했다. 순간 박 씨의 머리 위에 있던 탱크는 박 씨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이 사고로 박 씨의 오른발이 깔렸고, 동료들이 6시간의 구조 활동 끝에 그를 간신히 끌어냈지만 박 씨의 오른쪽 발가락뼈는 산산이 부서져 접합수술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의사는 그의 발가락 전부를 잘라야만 했다.
그 후에도 세균 감염으로 4차례나 추가로 잘라냈다.
박 씨는 주치의가 재활치료를 받아도 목발이나 지팡이가 있어야지만 걸을 수 있다고 했다며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쳐왔는지 절망하며 매일 밤 베개를 눈물로 적셨다고 회고했다.
우울증에 걸려 사람을 만나기조차 꺼렸던 박 씨에게 어느 날 아내가 성당에서 함께 무료 급식 봉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거동조차 불편한 그였지만 아내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봉사활동에서 자신보다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접하면서 이들에 비해 자신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 씨는 사고 이후 수중치료, 산악등반 등 세상에 알려진 모든 재활훈련을 받으며 휠체어에서 목발로, 목발에서 지팡이로 점점 호전됐고, 마침내 재활치료 5년 만에 지팡이가 없어도 일반인과 똑같이 걸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시는 일반인처럼 걸을 수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전 지금 걷고 뛰고 이렇게 마라톤까지 할 수 있답니다. 극복 의지만 있다면 기적을 이룰 수 있고,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보조기구 없이 걷게 되면서 뛰는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박 씨는 1년간 또다시 다리근육강화 운동을 계속해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 일반인과 다름없이 뛸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보통 사람의 경우 몸 전체의 1%에 해당하는 새끼발가락만 없어도 걷기가 힘들어 절뚝거리지만 박 씨는 자신의 장애를 의지로 극복해 낸 것.
이번 동아마라톤에서는 기록에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저와 비슷한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끝까지 완주할 생각입니다.
박 씨는 다음 달 1일부터 15일까지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장애인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한 달리기 행사를 계획했다.
호주에서 엔지니어링회사를 운영하며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박 씨는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준비를 시작했고 22일 한국을 찾았다.
행사 전 봉사단체에 730여만 원을 기탁한 박 씨는 15일간 16개 도시를 뛰거나 자전거로 달리면서 모금운동을 펼친다.
그는 매년 한국에 와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전국 달리기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후원 문의 월드비전 02-2078-7000, www.worldvision.or.kr
김동욱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