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수해를 이유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갑자기 연기함에 따라 수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관심을 끌고 있다.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북한 당국과 국제지원단체의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실제로 막대한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
관측 사상 최악의 홍수=북한에는 7일부터 11일까지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류길렬 북한 중앙기상연구소 소장은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동강 중상류의 최근 평균 강수량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함북과 양강도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지방이 큰 피해를 보았다. 평남 북창은 1년 평균 강수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672mm의 비가 엿새 동안 내렸다. 평남 덕천(621mm) 양덕(570mm), 강원 평강(662mm), 황북 서흥(476mm), 평양(460mm) 등에도 폭우가 쏟아졌다.
특히 양덕, 신양 등 평남 북부지역은 지난해 수해가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덮친 물난리로 절망적인 상황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피해 상황=북한 당국이 수해 이후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등에 밝힌 자료를 보면 사망실종자는 303명, 수재민은 30만 명에 이른다. 또 8만8400채의 집이 파괴되고 농경지의 11%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체 농경지가 150만 정보쯤 되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15만 정보가 피해를 본 셈이다. 이로 인해 40만 t 이상의 소출 감소가 예상된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가옥 침수는 3배, 농경지 침수는 5배나 많다. 반면 지난해 북한 당국이 밝힌 공식적인 인명피해가 사망 549명, 실종 295명, 부상 3043명인 데 비해 올해는 사망실종자 수가 적다. 북한 대부분 지방에서 통신과 교통이 마비된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는 아직 정확한 피해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평양도 피해가 크다. 북한 중앙통신은 16일 평양시에서 도로 2만3000m와 주택 6400가구가 파괴됐다면서 보통강구역 만경대구역 중구역 평천구역 등 일부 거리에는 물이 2m까지 차올라 교통이 마비되고 전력 공급과 통신망이 차단됐다고 보도했다.
진짜 피해는 이제부터=수해는 이제부터 주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절박한 문제는 철도와 도로 복구.
북한 주민 대다수는 장마당 등에 의존해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어 평소에는 북한 내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도 중국에서 수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통이 마비되면 주민들의 경제활동도 중단돼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쌀값은 최근 보름새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수해로 평남 양덕과 신양 2개 군을 지나는 평라선(평양-라진) 철로가 끊겼을 때 복구에 3개월이 걸렸다. 대부분 인력에 의존해 복구했기 때문이다. 북한 동서 및 남북을 잇는 유일한 철로인 평라선이 파괴되면 국가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 올해 평라선은 지난해 보다 더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탄광 침수와 발전소 피해도 커 전력 공급에도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여기에 복구와 방제 작업이 지연될수록 수인성 전염병과 농작물 병해충 피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수해에 대단히 취약하다. 연료난으로 산에서 땔나무를 마구 베다 보니 민둥산이 대부분이어서 산사태가 쉽게 난다. 또 기계장비가 부족해 복구도 매우 더디게 이뤄진다.
주성하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