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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외국인의 호적등본

Posted October. 03, 200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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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교통사고로 장애가 생겨도 장애인 등록증이 안 나오기 때문에 편의시설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명문대 교수건, 외국어학원 강사건 매년 갱신해야 하는 1년 비자만 주어진다. 배우자는 취업비자도 나오지 않는다. 고용비자 받기가 미국 영주권 받기보다 어렵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모든 생활 서류가 한글로만 돼 있어 일이 생길 때마다 서류대행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외국인들로선 한국에서 살아가기의 이런 불편이 섭섭하고 차별로 느껴질 때도 있다. 2년 전 서울대 공대의 첫 외국인 전임교수로 부임한 로버트 이언 매케이(58) 컴퓨터공학부 부교수도 마찬가지다. 그가 A4용지 29쪽에 빽빽하게 적어 학교에 낸 외국인 교수 유치 방안 보고서에는 주한 외국인들, 특히 우리가 어렵게 유치해 온 글로벌 탤런트(인재)들이 한국 생활에서 부닥치는 갖가지 불편과 불만이 함께 들어 있다.

외국인에게는 있을 턱이 없는 호적등본 제출을 요구받기도 하고, 학술진흥재단에 연구용역을 신청했다가 한글로 된 답변서를 받고 마감을 넘길 뻔했다고도 한다. 그뿐 아니라 연구비 신청, 논문 투고도 한글로 작업해야 한다. 말로만 글로벌 인재 채용이지, 영문 웹 사이트엔 세금, 연봉, 임기, 승진 기회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나와 있지 않다. 채용 절차도 투명하지 않아 구전(word-of-mouth)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구내식당도 채식주의자나, 돼지고기를 안 먹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위한 식단은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매케이 교수의 보고서를 읽다 보면 글로벌 코리아는 국제도시 몇 개 세우는 것보다 생활밀착형의 미시적 배려가 선행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세계의 인재들이 마음껏 활약하는 나라를 만들려면 그들의 편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학가의 국제화 바람을 타고 많은 대학이 앞 다퉈 외국인 교수와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잘 가르치고,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내놓을 수 있게 하려면 우선 한국에서 사는 것이 편하고 즐거워야 한다.

허 문 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