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밤의 도시다. 아니 물의 도시다. 예술의 도시고 맛의 도시다. 진주남강 유등축제에 가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
남강이 굽어 내려다보이는 강안 바위 절벽의 누대 촉석루. 의기() 논개가 한 떨기 꽃처럼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든 바위 의암()이 그 아래다. 지리산 자락의 경호강 덕천강 물을 담아(진양호) 굽이굽이 흐르며 진주를 적시는 남강. 그 남강과 촉석루의 만남은 가히 절세의 풍치다.
촉석루의 밤풍경은 강 건너 대나무 숲(공원)에서 봐야 제격이다. 새의 울음소리가 여전한 죽 장막 틈새로 조명에 더욱 아름다운 남강과 촉석루가 모습을 내비친다. 축제가 한창인 요즘은 강상까지 온통 화려한 유등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대숲 끝에는 천년광장이 기다린다. 이번에는 하늘로 솟구친 빛의 장대가 대나무를 대신한다.
남강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진주교와 천수교다. 진주야경에 이 다리들이 빠질 수 없다. 아치형 교각을 장식한 조명과 남강 수면에 비친 다리의 운치가 프랑스 파리의 센 강에 뒤지지 않는다. 가로등에 밝힌 뒤벼리(강변에 발달한 긴 벼랑) 강변도로의 밤풍경, 천수교 둔치를 화려한 빛깔로 장식하는 춤추는 음악분수도 명물이다. 매일 밤 산책객을 부르는 화려한 조명의 춤추는 분수, 이것만으로도 진주에서 삶은 기쁨이 될 만하다.
물의 도시, 진주
진주와 남강은 동전의 앞뒤다. 남강이 있어 진주성이 있고 진주성이 있어 진주가 있기 때문이니 유등이 진주에서 유래함은 필연이다. 임란 당시 진주성을 보자.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천혜의 철옹성이었다. 남으로는 남강, 북으로는 대사지(연못), 동으로는 해자, 서로는 나불천. 난감했던 왜군은 대사지를 메우며 도강을 시도했고 성안의 관군과 의병은 유등을 띄워 그들을 저지했다.
진주성을 에두른 물은 사라졌지만 그것을 대신한 것이 있다. 진양호다. 남강다목적댐으로 조성된 호수인데 진주 사천 통영 세 도시의 식수원이다. 마라톤코스로도 이름난 호반도로 역시 야경이 멋지다. 1년계단(계단 365개)의 터널식조명, 수면조명, 수면에 비친 동산을 스크린 삼아 비추는 조명으로 진양호의 야경 또한 볼 만하다.
교방문화와 대중예술의 모태, 진주
남 진주, 북 평양. 조선시대 풍류객 사이에 돌던 말인데 두 고장의 교방()문화, 즉 기생을 이름이다. 교방이란 고려 때 시작돼 1905년까지 존속된 관기양성기관. 진주기생은 고려사에 등장할 만큼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는데 승이교(중국 당대 최고 미녀였던 손책의 부인 대교와 주유의 부인 소교를 넘어선다는 뜻)는 황진이 홍랑 매창 등과 더불어 조선 명기의 반열에 올랐다.
진주교방의 예술향은 진주 사람에 의해 맥이 이어지는 진주검무, 한량무, 교방굿거리, 선유락 같은 교방무에 그대로 녹아 있다. 교방이 해체되고 권번이 대신한 뒤에도 교방예인의 끼는 그대로 진주문화에 녹아들었다. 진주문화예술재단 장일영 부이사장은 시인 김소월도 스승에게서 시 공부자료로 진주기생의 시를 받았을 정도라면서 교방에서 비롯된 예술적 기질은 훗날 진주가 한국가요 태동기에 많은 작곡가와 가수를 배출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짝사랑 목포의 눈물 바다의 교향시의 손목인,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의 이재호, 대머리총각 육군 김일병의 정민섭이 모두 진주 태생 작곡가다. 27년간 애수의 소야곡 등 1000여 곡을 부른 가수 남인수 역시 진주 출신이다.
매년 5월 열리는 진주 논개제는 이런 교방문화를 엿볼 수 있는 행사. 진주 교방무를 비롯해 진주오광대놀이 등이 공연된다. 그 서막인 의암별제는 1868년(고종)에 시작한 국가 주도의 논개 추모행사인데 현재 고증해 재현하고 있다. 촉석루 옆의 논개 사당인 의기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논개의 의로운 죽음을 기념하는 의기사에는 논개 영정과 함께 다산 정약용의 글이 있다. 다산은 한 연약하고 어린 여인이 마침내 왜장을 죽여 나라에 보답할 수 있었다면 군신간의 의리가 천지간에 밝혀진 것이니 한 성의 패배쯤은 근심할 것이 없으며 이 어찌 장쾌한 일이 아닌가라고 적고 있다.
맛의 고장, 진주
진주의 음식 역시 교방문화의 산물이다.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내내 경상도의 중심 고을이었던 덕에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를 위한 가무와 연회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다. 지리산과 남해바다를 지척에 두고 경상과 전라 두 문화권의 통로에 위치한 점도 진주의 음식문화가 발전하는 데 힘이 되었다.
교방과 권번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있던 음식의 향취와 색감, 맛을 느낄 만한 곳이 있다. 일본인 관광객에게 대장금 요리체험 코스로 이름난 한정식당 아리랑(대표 이소산)이다. 전통 오방색과 오미()를 주축으로, 걸쭉한 호남 한정식과 완벽히 차별되게 차려내는 진주 교방 전통의 깔끔한 상차림. 진주를 다시 보게 만드는 색다른 음식체험이 된다.
진주 특미라면 진주비빔밥과 장어구이다. 비빔밥은 전주가 본가처럼 알려졌지만 진주에서만큼은 진주를 본고장으로 친다. 이 역시 진주성 싸움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다. 진주식과 전주식의 가장 큰 차이를 진주 사람들은 육회에 둔다. 진주비빔밥에는 반드시 육회가 놓인다는 것인데 함께 내는 보탕국 혹은 선짓국도 그 차이라고 말한다.
장어구이는 오랜 전통의 토속음식. 진주성문 앞 남강변의 장어거리(식당 20여 곳)는 장어구이 식도락 1번지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