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생활 팔기

일본에서 발달한 사()소설은 작가의 경험과 사생활을 거의 생으로 중계한다. 평범한 체험은 주목받지 못하므로 작품이 되려면 극적()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부 사소설 작가들은 작품을 위해 자신의 삶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토 세이의 말처럼 소설을 쓸 때는 생활이 망가지고 쓸 수 없을 때는 생활이 안정되는 이율배반에 빠지는 것이다.

일본의 사소설은 1970년대 사회성 짙은 전후()문학을 넘어 1980년대 주류문학의 자리를 차지했다. 한국소설도 1990년대 중반 들어 사소설적 경향을 띠기 시작한다. 두 나라 모두 역사, 전쟁, 사회 등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시점과 맞아떨어졌다. 탈()이념, 탈집단, 탈가족주의가 낳은 미이즘(me-ism)은 소설, 영화, 방송 등 다양한 문화상품의 새로운 코드가 됐다.

요즘 우리 대중문화에 사생활 세일즈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결혼, 이혼, 출산, 열애, 결별, 성형, 심지어는 가족의 병력()에다 성()생활까지 털어놓는다. 사생활을 파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시청자를 비롯한 소비자들이 그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얘기를 들음으로써 위로받고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생활 팔기는 과다 노출증에 지나지 않으며 사회의 퇴폐를 부추기기 십상이다.

잉꼬부부로 소문났던 한 중견 탤런트 부부의 이혼이 화제다. 그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의 전도사를 자처해 왔기에 충격이 크다. 한 사람은 방송에서 성()을 주제로 부부 사랑의 비결에 대해 얘기했고, 다른 한 사람은 결혼 컨설팅까지 했다. 그들 또한 일종의 사생활 팔기를 통해 인기도 얻고 성공도 했기에 이혼 뒷얘기가 더 씁쓸하다. 잠자리 횟수까지 공개하며 파경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이 안타깝다. 차라리 그들의 사생활이 철저히 가려졌거나, 아니면 화제가 안 되는 보통 부부였다면 떫은 뒷맛을 남기지 않았을 텐데 싶다.

허 문 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