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주변에 모인 구경꾼들에게 방패를 내보이며 자, 여러분, 이 방패는 어떤 것으로 찔러도 뚫리지 않습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번에는 창을 쳐들고 이 창으로 뚫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자랑했다. 구경꾼이 상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 상인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2000여 년 전의 한비자()에 나오는 고사()다.
언행의 앞뒤가 맞지 않고 어긋나는 경우에 쓰는 모순()이란 말은 바로 이 고사에서 비롯됐다. 그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광주 발언이 이 상인의 말을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전 총재는 희망한국운동본부 초청 강연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개혁 개방의 효과는커녕 오히려 핵보유국이 되는 데 기여했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한반도에 직접 대화의 물꼬를 튼 업적을 남겼다고 DJ를 높이 평가했다.
DJ에 대한 이런 상반된 평가는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처럼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대화의 물꼬를 튼 업적을 인정한다면 햇볕정책도 긍정 평가해 줘야 논리적으로 맞다. 이 전 총재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왜 이렇게 말했을까. 정통 보수의 안보관을 대선 재()출마의 명분으로 내세운 그로서는 햇볕정책을 비판함으로써 보수층의 마음도 얻고, 동시에 DJ를 치켜세움으로써 호남 유권자들에게도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부정해 온 이 전 총재라면 DJ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햇볕만 고집하지 않고 때로는 압박도 하고 채찍도 들었더라면 북의 행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북은 핵을 개발할 돈도 시간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10년이란 시간을 낭비했다.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햇볕을 팔아 DJ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5000만 국민은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됐다 소신 있는 지도자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는 법이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