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에서 범여권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주장이 민주당 쇄신위원회에서 제기됐다.
범여권 통합 논의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이 오판()을 전제로 현실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해 중도개혁세력이 분열됐고, 이로 인해 대선 득표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이 가장 큰 대선 패배의 이유라는 것은 대통합민주신당 측 진단과 같다. 하지만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범여권의 한 축에서 대선 패배의 DJ 책임론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향후 정계 개편 방향과 관련해 파장이 예상된다.
DJ 책임론 제기=민주당 황태연(동국대 교수) 중도개혁국가전략연구소장은 2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쇄신위 회의에서 (범여권이) 80여 석의 중도정당이 돼서 후보를 뽑았다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고, 만약 지더라도 총선에서 견제세력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책임은 DJ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황 소장은 이에 앞서 6월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대철 고문, 정동영 후보, 김한길 의원과의 4자 회담에서 80여 석의 중도개혁정당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DJ가 정대철과 다른 분을 불러들여 그 합의를 깼다. 이후 김한길 의원이 빠져나왔고 30여 석의 중도개혁정당이 됐는데 그것도 깨졌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또 신당과 민주당의 당 대 당 통합 협상이 결렬된 배경을 설명하며 4자 지도부가 (통합) 합의를 했는데 DJ가 오마이뉴스를 불러서 통합 없는 후보 단일화를 하라고 (보도가 나가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범여권 중도파가 당초 의지대로 친노(친노무현) 세력을 배제하지 못한 채 도로 열린우리당 격인 대통합민주신당에 어쩔 수 없이 합류한 것과, 선거 막판 범여권 당 대 당 통합이 결렬된 데는 결국 DJ의 뜻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황 소장의 진단이다.
김 전 대통령 측 최경환 비서관은 이에 대해 특별히 무언가를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 민주당에서는 늘 그런 비판을 해 오던 분들이 계시지 않나라고 말했다.
황 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고, 1997년 대선 때는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바 있는 DJ의 정책 브레인 출신이다.
총선에서는 탈()DJ로 가나=황 소장을 포함한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 결과 DJ의 대()호남 영향력도 사그라진 만큼 탈()DJ 선명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 DJ의 정치적 고향인 전남 목포에서 DJ가 사실상 지지한 정동영 후보는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얻은 95.9%보다 15.8%포인트 떨어진 80.1%를 얻었다.
김민석 당 쇄신위원장은 정치적 부담이 염려되는 만큼 김 전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는 개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신 호남에서 현역 의원 교체 심리가 상당하고, 어차피 한나라당은 가능성이 적다. 전적으로 민심에 기반한 깨끗한 공천으로 맞선다면 민주당에도 희망이 있다고 덧붙였다.
당 쇄신위 소속 유종필 대변인은 향후 민주당의 연대 방향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실패 책임을 묻는 한편 대통합민주신당 내 김한길 그룹이나 창조한국당과의 연대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인직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