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에 조()나라 재상을 지낸 평원군()은 식객이 수천 명이었다. 강대국 진()이 침략해오자 식객 중에 문무에 뛰어난 20명을 뽑아 초()의 지원을 요청하러 가기로 했다. 19명은 정했는데 나머지 한 명을 고르지 못했다. 모수()라는 사람이 스스로 나섰다. 평원군은 쓸만한 인물은 자루 속에 든 송곳처럼 끝이 드러나는 법인데 자네는 우리 집에 3년이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잖느냐고 했다. 모수는 저를 자루 속에 넣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평원군이 모수를 데려가 동맹외교에 성공한 뒤부터 쓸만한 사람은 낭중지추(: 자루 속의 송곳)라고 불렸다. 세종대왕 때 황희 정승은 거꾸로 자신을 승핍(: 재능 없는 사람이 벼슬을 하고 있음)이라고 깎아내리며 사퇴하려다 왕의 윤허를 받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당나라 덕종()은 내란을 피해 달아나면서 한 백성이 과일을 바치자 그에게 관직을 주려다 언관()인 육지()의 간언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공직사회든 기업이든 숨은 인재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최적임자를 골라낼 수만 있다면 자천 타천을 가릴 이유가 없다. 인사()야말로 만사()이기 때문이다. 자천()도 인재발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스스로 적임자라고 나서는 사람은 일단 경계해봄직하다. 뒷전에서 연줄이나 뇌물까지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인사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5년간 그런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정상적 절차를 통한 인사추천과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인사청탁은 구별된다. 농협이 직원인사를 앞두고 외부에 줄을 댄 청탁자 110명에게 경고장을 보냈다고 한다. 해당자는 두고두고 인사에 불이익을 받게 될 처지다. 뿌리 깊은 인사청탁의 악폐가 그 정도로 사라질 지 의문이지만 그 의지는 평가할만하다. 이명박 정부는 첫 내각 인사에서 이미 3명의 장관 후보를 잃었다. 인사시스템이 고장 나면 망사()가 될 수 있다는 값비싼 교훈이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