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기본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고, 국민의 애로와 불편을 덜어주는 일이다. 한 푼의 세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정부조직과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꾸리는 것이나 국민이 최적의 상태에서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공직자들의 소임이다. 이런 책무를 다하려면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공무원 스스로 헌신할 자세를 갖추고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더구나 새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온갖 민원에도 불구하고 5년간 요지부동이던 대불공단 전봇대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사흘 만에 뽑힌 일은 한 편의 코미디에 가까웠다. 최근 기획재정부 등 여러 부처들은 직제에도 없는 테스크포스(TF)팀을 양산해 정부조직 통폐합으로 발생한 유휴 인력을 배치하려다 이 대통령의 불호령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해체했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전봇대도 그대로고 작은 정부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될 뻔 했다.
경찰은 고양시 초등학생 납치 미수사건을 대충 깔아뭉개려다 대통령이 일선 경찰서까지 찾아가 질책하자 수사 인력을 대거 풀어 용의자를 검거했다.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침묵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범인은 계속 세상을 활보하며 제2, 제3의 범행을 저질러 혜진예슬 양처럼 어린 생명들이 또다시 희생됐을 지도 모른다.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비단 이뿐도 아니다. 새 대통령은 정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연일 재촉하지만 관료사회의 변화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느리다. 대통령이 나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정부를 어찌 제대로 된 정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관료체질로는 섬김의 정부를 만들 수도,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 수도 없다.
대통령이 정부 말단의 일에까지 일일이 신경 쓰는 것도 이미 거대국가가 돼있는 이 나라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민생과 직결되는 일선경찰부터가 잠자고 있다면 이는 대통령뿐 아니라 온 국민이 나서 질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공무원들은 제발 대통령이 나서기 전에 스스로 움직이라. 그리고 변하라. 우리 공직자가 이 시대의 걸림돌이 될 정도의 위험수위에 온 것 같다는 대통령의 지적을 공직자들은 행동으로 뒤집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