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20일 오전 7시 25분 청와대 본관 앞에 도착했다.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박재완 대통령정무수석이 그를 영접해 2층 백악실로 안내했다. 기다리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이 손 대표를 반갑게 맞았다. 두 사람은 2시간 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문제를 놓고 조찬을 겸한 회담을 했다. 그러나 어떤 합의도 없었다. 오후 2시, 임채정 국회의장(민주당 소속)은 FTA 비준안 직권 상정을 거부했다. 임 의장은 작년 대선 직전 이른바 BBK 특검법안을 직권 상정한 사람이다. 임채정=BBK는 상정하고 FTA는 상정을 거부한 국회의장이 된 것이다.
손 대표가 청와대를 떠나고 2시간 반 뒤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는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혹시라도 한국민의 촛불집회가 이데올로기나 반미감정으로 폄훼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쇠고기 재협상이 진행돼야 FTA를 논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반미시위가 아니라는 그의 발언에 한 외신기자가 촛불시위에는 아프가니스탄 납치사건 때 시위했던 (반미)단체도 있었다고 반박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가 촛불집회장에 깔려 있는 반미기류를 정말로 못 느꼈다면 정치인으로서 무감각한 것이 아닐까.
이-손 청와대 회동에 박상천 민주당 공동대표는 뿔이 난 모양이다. 손 대표가 민주당의 법적 대표지만 정치적으로는 두 사람이 공동대표다. 손 대표가 청와대 회동에 대해 박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고, 박재완 수석도 전날 민주당 방문 때 박 대표를 찾지 않았으니 기분이 상했을 법하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손 대표를 겨냥해 그 사람,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 싸가지가 없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17대 국회가 열흘밖에 남지 않은 이날 민주당 안팎의 풍경은 파장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4년 전 152석의 거대 여당으로 출발한 열린우리당에서 변신한 민주당이 원내 제1당 시대를 마감하는 순간까지 국익에 봉사하려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81석으로 시작하는 18대 국회에선 도로 야당이 됐으니까 선명야당을 외치며 여당과 폼 나게 싸우는 데 몰두할 것인가.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