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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실향민첫 시국선언

Posted June. 18, 200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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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보던 죽창이었다. 시뻘건 깃발도 똑같았다. 60여 년 전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죽창으로, 인민재판으로 무자비하게 부모 형제들의 생목숨을 앗아갔다. 아무리 고향땅이지만 더는 살 수 없어 맨몸으로 월남했고, 대한민국을 이만큼 일궈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 다시 죽창과 시뻘건 깃발이 등장하다니. 60여 년 전 실향민 단체들이 조직된 뒤 처음으로 엊그제 대한민국 정체성 확립을 위한 800만 이북도민 시국선언문을 낸 최명삼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대표(84)는 참다 참다 못해 나섰다고 했다.

누구보다 북한 실상을 잘 아는 우리들로선 작금의 사태를 보면 암담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한강의 기적이 민주주의 후퇴라면 김일성왕조 3대 세습은 민주주의의 진보냐. 함경북도 도민회장인 최 대표는 격앙돼 있었다. 60여 년 전에도 완장 찬 그들은 김일성 장군님이라고 극존칭을 하면서 이승만은 역도니, 살인자니, 친일매국노라고 매도했다. 지금도 깃발 쳐든 이들은 김정일에게 꼬박꼬박 국방위원장이라면서 국민이 뽑은 대통령한테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는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는 겪어보지 않고선 모른다. 남한사람들은 명절 때 차가 막힌다고 고향길이 지옥길 귀경()전쟁 등 배부른 소리를 해대지만, 가볼 수 없기에 미치도록 사무치는 곳이 북녘에 있는 고향 땅이다. 실향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도 금수강산이었던 내 고향이 핵 기지로 둔갑됐다는 점이다. 내 핏줄이 배곯을 줄 알면서도 북한이 핵을 폐기할 때까지 모든 대북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자수성가한 이북사람들은 내 눈으로 확인한 것, 내 손에 쥐어진 것만 믿을 만큼 현실적이다. 햇볕정책으로는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꺾을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좌파정권 10년간 이들은 속으로만 삭여야 했다. 그랬더니 일부 정치세력과 대학교수, 친북단체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대놓고 김정일 정권을 옹호하고 있다. 최 대표는 묻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분투노력한 결과가 겨우 이거냐. 이젠 아스팔트 위의 당신들이 답할 차례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