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이후 137일째 북에 억류됐던 현대아산 근로자 A 씨가 어제 석방됐다. A 씨 석방은 북한이 미국에 이어 남한에 대해서도 관계 개선을 위한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끼리를 입에 달고 사는 북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노동교화형 12년을 선고했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석방해놓고 A씨를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북이 비록 A 씨를 석방했지만 남북간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인도적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북은 지난달 30일 동해에서 기계 고장으로 항로를 잃고 북측으로 넘어간 800 연안호 선원 4명을 아직까지 억류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날 서해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실수로 넘은 북한 어선을 당일 되돌려 보낸 바 있다. 북한은 연안호 선원들도 즉시 석방하고 더는 인질을 이용한 치졸한 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 중단의 계기가 된 지난해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총격 살해 사건에 대해서도 북은 13개월이 지나도록 재발 방지 약속은 물론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박 씨 문제 해결 없이 금강산 관광 재개는 있을 수 없다. 북은 A 씨 석방으로 이같은 문제들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오판이 될 것이다.
정부는 A 씨 석방으로 남북관계에 일대 변화가 올 것처럼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인도적 문제가 모두 해소된다고 해도 북핵 문제는 전혀 별개이다. 핵에 대한 북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는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 도발-유엔 제재-특사 파견-보상 후 대화 패턴이 반복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보상하는 패턴을 깨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여기자 석방과 핵 문제는 별개라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난 11일 북한의 조선광선은행을 금융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북이 한미 양국에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벼랑 끝 전술로 자초한 유엔의 경제 제재에 따른 고립을 모면하려는 술수로 보인다. 북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 및 북-미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북이 과거 패턴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오판하지 않도록 한미 공조를 통해 냉정하고 원칙적인 대응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북이 억류자를 석방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태도만 표명하면 다양한 대북 지원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성급하다.